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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함께 읽기 19

조태일의 ‘국토 서시’를 들으며 조태일 시인의 역사의식, ‘국토 서시’ ▲ 교육학자 고 성내운 교수가 낭송하는 조태일의 시 '국토 서시' 조태일(1941~1999)의 를 성내운 선생의 목소리로 다시 듣는다. 조태일 시인을 다시 기억 속에서 불러낸 것은 순전히 성내운 선생의 ‘마치 영혼 깊은 곳에서 울려오는 듯한’ 목소리 덕분이고 턱까지 치받고 올라온 한미 FTA 소식 탓이다. [시 전문 텍스트로 보기] 그를 처음 만난 것은 고등학교 시절, 문예 동아리 방에서였다. 시를 쓰는 친구들이 으스대듯 전해 주던 그의 연작과 따위를 통해서였는데 어렸던 때라 ‘멋있긴 하지만 좀 과격한, 괴짜 시인’ 정도로 그를 기억하게 되었던 것 같다. 이 시를 새로 들으면서 그가 이미 고인이 됐다는 걸, 그리고 70년대 유신독재에 정면으로 맞섰던 이였다는 걸 뒤.. 2020. 3. 18.
성내운의 목소리로 듣는 신동엽 시인의 ‘진달래 산천’ 고 성내운 교수의 을 들으며 성내운 교수의 시 낭송은 여느 사람의 것과는 다르다. 그의 목소리는 옷깃을 여미게 하는 비장감으로 다가오는가 하면,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격동하는 감정의 분출을 뜨겁게 느끼게 하기도 한다. 그는 김구와 장준하와 문익환의 사자후를 대신 토하기도 하고 신동엽과 고은, 조태일과 김지하의 시를 읊조리며 우리를 당대의 가장 뜨거운 현장으로 이끌기도 한다. 나는 저서를 통해 그를 알았지만, 그가 뜨거운 낭송의 주인공이었다는 것은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야 알았다. 어떤 경로였는지, 그의 시 낭송 1집 테이프가 내 손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는 1989년 12월에 세상을 떠났다. 89년이라면, 민족·민주·인간화 교육을 내걸고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출범한 해다. 교육지표 사건이 아니더라도 전교.. 2020. 3. 12.
김광규 시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김광규의 시는 평범한 일상을 다루면서도 그 속에 곡진한 삶의 흔적과 체취를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의 발언은 낮으면서도 적지 않은 울림을 갖고 있다. ‘묘비명(墓碑銘)’은 어느 부자의 무덤 앞에서의 상념을 통해 ‘역사’와 ‘시인’을 노래한다.[ 시 전문 읽기]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는 기성세대로 편입한 혁명 세대의 우울한 초상을 그리고 있다.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는 노래’,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노래’를 ‘저마다 목청껏 불렀’던 그들은 ‘살기 위해 살고’, ‘아무도 이젠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 그리고 ‘옛사랑이 피 흘린 곳’을 지나며 부끄러움을 느끼지만, ‘바람의 속삭임 귓전으로 흘리며’, ‘짐짓 중년기의 건강을 이야기’하고, ‘또 한 발짝 깊숙이 늪으로 발을 옮’기는 것이다. [시 전.. 2020. 1. 6.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이후 20년 신영복 선생의 그리고 20년 글쎄, 쇠귀 선생의 글은 모두 짙은 사색의 향기를 어우르고 있긴 하지만, 그가 쓴 글의 으뜸은 역시 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거기 실린 글 ‘비극에 대하여’를 읽고서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20년 20일쯤을 감옥에서 보낸다면 이런 깨달음, 이런 인식의 지평에 이를 수 있는 것인가. 신영복 선생을 만난 게 1988년이다. 87년 6월항쟁의 과실을 어부지리로 챙긴 노태우가 올림픽에 명운을 걸고 있던 때였다. 3월에 4년간 근무한 여학교를 떠나 고향 인근의 남학교로 옮겼다. 전세 500만 원, 재래식 화장실에다 부엌이 깊은 집(가족들은 지금도 그 집을 ‘부엌 깊은 집’으로 부르곤 한다.)에 들었다. 그 당시 창간된 을 받아보았는데 그 지면에서 쇠귀의 글을 만났다. 서른셋, 이른바 학.. 2019. 10. 26.
밀밭 속에 남긴 황홀한 젊음 - 황순원의 ‘향수’ 황순원의 초기 시 ‘향수’ 시골에도 사랑은 있다. 하긴 사람이 사는 곳인데 사랑 없는 데가 어디 있으랴! 아니다, 시골에도 로맨스가 있다고 쓰는 게 더 정확하겠다. 사람이 있고 삶이 있으니 거기 로맨스가 있는 것 역시 ‘당근’이다. 그 전원에서 이루어졌던 사랑은 어떤 모습일까. 시골의 사랑, ‘밀밭의 사랑’ 뜬금없이 ‘전원의 사랑’ 운운하는 이유는 황순원의 시 ‘향수’를 떠올렸기 때문이다. 얼마 전 아이들과 함께 황순원의 단편소설 ‘물 한 모금’을 공부했다. 작가를 소개하면서 나는 그가 쓴 초기 시 몇 편을 들려주었다. 까마득한 옛날이야기다. 중학교 때던가, 우리 집에는 자줏빛 하드커버의 이 있었다. 거기서 읽은 그의 시 두 편이 기억에 남아 있다. ‘빌딩’이라는 한 줄짜리 시와 ‘향수’가 그것이다. ‘.. 2019. 6. 17.
소년과 전화 안내원의 우정과 교유 - 빌라드 <안내를 부탁합니다> 빌라드의 단편 뜻밖에 폴 빌라드의 은 많은 분들의 사랑을 받은 듯하다. 읽은 이는 물론이거니와 처음 이 글을 만난 이들도 잔잔한 감동을 느꼈다고 한다. 작품의 자연스런 전개와 진정성 탓이었으리라. 그의 유년 시절의 성장통을 그린 자전적 에세이 《Growing Pains》에 실린 단편 중 하나인 은 누구나 거치는 유년 시절, 그 성장의 민감한 순간을 스쳐 간 보편적 공감을 그리고 있는 글이다. (이 글을 굳이 장르로 구분할 필요는 없겠다. 소설이든 수필이든 아름답고 따뜻한 글이니 말이다. ) 댓글을 달아준 선배 교사가 이 ‘소설’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그이는 또 그의 수필 를 ‘강권’했다. 요샛말로 하면 ‘강추’다. 물론 나는 그 글의 존재는 알고 있었다. 그것은 ‘폴 빌라드’로 검색하면 어김없이 .. 2019. 1. 13.
모든 ‘인식’과 ‘삶의 전제’로 빛나는 - 폴 엘뤼아르 「자유(自由)」 폴 엘뤼아르, 초현실주의를 대표하는 프랑스 시인 폴 엘뤼아르(Paul Eluard, 1895~1952)의 ‘자유’는 고등학교 시절, 그 첫 연을 내 자취방 벽에 붉은 매직으로 휘갈겨 써 놓았던 시이다. 누구나 그렇듯 나는 제대로 된 문학교육을 전혀 받지 못했고, 이른바 ‘세계의 명시’ 따위는 싸구려 다이제스트 시집을 통해서 간신히 알게 되었다. 학교 도서관이나 형의 서가에 박혀 있던 흰색 장정판(하드 커버)의 그 시집들에서 그냥 겉멋으로(!) 하이네와 릴케, 워즈워스와 포의 시를 맛보고, 그것들 가운데 제법 멋있는 시구(詩句)들을 외우는 정도로 외국 시에 입문했었다.이후,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했지만, 거기서 특별히 현대시를 제대로 배우지도 못했다. 프랑스 시인들을 이해하기 시작한 것은 학교에서 아이들에.. 2019. 1.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