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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풍경139

만추, 수학능력시험 내 숲길에는 가을이 더디다, 하고 쓴 게 얼마 전이다. 그러나 어느새 가을은 깊숙이 나무와 숲에 당도해 있다. 단풍을 나무랐지만, 솔숲에 알게 모르게 어린 기운은 쇠잔한 가을빛이다. 안개 사이로 길을 재촉하는 여학생이나 원색의 옷을 차려입고 바쁘게 산길을 나아가는 등산객들의 모습에서도 가을은 이미 깊다. 11월인가 싶더니 어느새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코앞이다. 지난 3년 동안의 공부를 마무리하고 있는 3학년 교실에는 허탈과 비장감이 엇갈린다. 교실 뒷벽마다 후배들의 기원이 담긴 펼침막이 걸려 있다. 더 나은 결과를 얻으려는 마음이야 누군들 같지 않겠는가. “펜이 가는 곳마다 답이 되게 하소서.” 2014. 11. 9. 낮달 일주일이 무섭다. 오늘 아침에 만난 숲길의 단풍이다. 모두 스마트폰으로 찍었다. 이제.. 2021. 11. 9.
행운이 함께하는 사랑? ‘아이비’ 기르기 뒤늦게 ‘화초 기르기’에 입문하다 ‘화초 기르기 입문(?)기’ 라며 ‘건방’을 떤 게 지난 2008년 10월이다. 동료 여교사에게서 분양받은 고무나무 한 그루와 제라늄 한 포기를 집에 가져다 사진을 찍어 블로그에 올린 것이다. 그러고 보니 벌써 세 해가 훌쩍 지나갔다. [관련 글 : 화초 기르기 입문(?)기] ‘근화자향(近花者香)’이니 ‘균제미(均齊美)’가 어쩌니 운운했는데 부끄럽다. 지금 그것들은 집에 없다. 제라늄은 일찌감치 말라버렸고 고무나무도 채 1년을 넘기지 못하고 시들어 버렸다. 민망하지만 나누어준 동료에게 그 사실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작년 2월, 학교를 옮기게 된 그 동료가 아쉬웠던지 호야 한 그루를 건네주었다. 잎이 아주 묘한 이 덩굴식물은 두꺼운 잎의 몸피와 테를 두른 듯한 잎 .. 2021. 11. 7.
억새와 갈대, 아직도 구분하는 게 어렵다면 억새는 산이나 비탈, 갈대는 물가에… 같은 듯 다른 풍경 가을 들판에 바람에 누웠다 일어나는 억새를 편하게 ‘갈대’라고 부르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는 이름으로는 억새와 갈대를 구별하지만, 그 실물과 이름을 맞추지 못해서다. 둘을 혼동해도 불편하지 않은 건 그렇게 말해도 아무도 그걸 문제 삼지 않기 때문이다. 갈대는 산에서 자라지 않는다 사람들이 갈대와 억새를 구별하지 못하는 것은 그걸 일상에서 제대로 살펴볼 기회가 없어서가 아닌가 싶다. 억새나 갈대를 자기 집 화단에 기르는 이는 없으니, 그걸 만나려면 산이나 들로, 호숫가로 가야 한다. 그리고 억새와 갈대가 한자리에 있어서 눈여겨보고 어떻게 다른지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런 기회가 모두에게 있는 건 아니다. 농촌에서 자란 이에게 억새는 낯.. 2021. 10. 22.
솔숲이 사라진 한반도, 상상하고 싶지 않다 이런저런 일로 일주일 넘게 산을 통 찾지 못했다. 강원도를 다녀와 하루를 쉬고, 다음 날 산에 올랐다. 산 중턱에 짓고 있는 전원주택을 지나면 바로 등산로다. 그 어귀에 들어서다가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꽤 굵직한 소나무 한 그루가 쓰러져 길을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나무의 빨간 띠, 노란 딱지 뒤늦게 온 태풍은 피해 갔다는데 웬 나무가 다 쓰러졌나 싶었는데, 나무 몸통에 붉은 페인트 자국이 선명하고 그 위에 노란 딱지가 붙어 있다. 노란 딱지는 ‘소나무재선충병 방제사업’을 알리는 표지였다. 언덕 위에도 몇 그루가 같은 빨간 띠와 노란 딱지를 달고 있었다. 수십 년을 묵었을 나무인데도 언덕 아래로 벋은 나뭇가지는 모두 벌겋게 말라 죽어 있었다. 아마 소나무재선충에 감염된 나무라는 표지인 듯했다.. 2021. 10. 22.
‘도토리’ 노략질 이야기 수업 없는 시간에 뒷산 기슭에 무리지어 핀 쑥부쟁이를 찍었다. 후배가 ‘백구자쑥’이라고 한 그 쑥부쟁이다. 보랏빛 쑥부쟁이를 찍었으니 남은 건 흰빛의 구절초[백구(白九)]다. 산이 깊지 않아서일까. 뒷산에는 구절초가 눈에 띄지 않는다. 동료로부터 어느 골짜기에 가면 구절초가 두어 포기 피어 있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선뜻 길을 나서지는 못한다. 그게 내가 원하는 그림이 아닐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근처에 다른 쑥부쟁이가 더 있지 않을까 싶어 길도 없는 숲으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쑥부쟁이를 찾다가 내가 찾은 건 숲에 소복이 떨어진 도토리였다. 꿀밤! 국어사전에서야 ‘도토리’라고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내게 그것은 ‘꿀밤’이다. 간밤에 분 바람 탓일까. 제법 굵직한 크기의 도토리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가으내.. 2021. 10. 16.
보랏빛 아스타 꽃밭에 ‘풍차’까지…여기 진짜 한국 맞아? [여행] 가을 인생 샷 명소, 경남 거창 감악산 ‘꽃&별 여행’ 현장에 가다 감악산(紺岳山, 952m)의 구절초꽃 소식은 기사로 들었다. 감악산? 처음 듣는 산 이름인데도 그 울림이 예사롭지 않았는데, 인터넷 검색으로 그게 경남 거창의 안산이라는 걸 알았다. 산 중턱에 있는 연수사(演水寺)는 본디 신라 애장왕 때 감악 조사(祖師)가 세운 감악사였으니, 산과 절, 스님의 이름이 모두 ‘감악’으로 똑같다. 거창군 축제 ‘감악산 꽃&별 여행’ 구절초 꽃을 따라가니 감악산 정상 아래 감악 평전(平田)에서 지난 24일 개막하여 오는 17일까지 베풀어진다는 거창군의 축제 ‘꽃& 별 여행’ 소식이 있었다. 축제 이름에 ‘별’은 밤이면 하늘에서 별빛과 거창읍 야경을 즐길 수 있다고 해서 붙었다. 나는 주말과 공휴일에 .. 2021. 10. 3.
동해가 보이는 메타세쿼이어숲… 백만 불짜리 ‘공짜’ 풍경 [여행] 무료 개방 경북 영덕 벌영리의 사유림 메타세쿼이아숲 한가위 다음날, 가족과 함께 영덕 벌영리 메타세쿼이아숲을 다녀왔다. 주인이 20여 년간 심어서 가꾼 숲을 누구든 찾아와 쉴 수 있게 무료로 개방하면서 알려진 사유림이다. 영덕 여행에 빠지지 않고 소개되어 최근에는 지역관광기관협의회에서 뽑은 전국 비대면(언택트) 관광지 100선에도 이름을 올렸단다. 무료 개방하고 있는 사유림 영덕 벌영리 메타쉐쿼이아숲 요즘 메타세쿼이아(‘-세콰이어’가 아니라 ‘세쿼이아’로 써야 맞다)는 흔하다고는 말할 수 없어도 드문 나무라고 할 수도 없다. 주로 남부지방에서 가로수로 심으면서 널리 알려졌고, 담양의 메타세쿼이아 길은 전국적인 명소가 되었다. 벌영리 메타세쿼이아숲에 마음이 간 것은 힘들여 가꾼 숲을 ‘이웃에게 거.. 2021. 10. 2.
초가을, 산, 편지 초가을, 북봉산에서 초가을, 산 아직 ‘완연하다’고 하기엔 이르다. 그러나 이미 가을이 깊어지고 있음은 모두가 안다. 그것은 숨 가쁘게 달려온 지난 시간을 새삼 실존적으로 환기해 준다. 어쩔 수 없이 가을이라고 인정하면서도 자기 삶의 대차대조표를 들이대기엔 아직은 마뜩잖은 시간이지만. 아침저녁은 서늘한 반면 한낮엔 아직 볕이 따갑다. 그러나 그것도 ‘과일들의 완성’과 ‘독한 포도주’의 ‘마지막 단맛’(이상 릴케 ‘가을날’)을 위한 시간일 뿐이다. 자리에 들면서 창문을 닫고, 이불을 여며 덮으며 몸이 먼저 맞이한 계절 앞에 한동안 망연해지기도 한다. 늦은 우기에 들쑥날쑥했던 산행을 다시 시작했다. 공기가 찬 새벽을 피해 아침 8시 어름에 집을 나선다. 한여름처럼 땀으로 온몸을 적실 일은 없지만, 이마에 흐.. 2021. 9. 13.
숲 산책, ‘가지 않은 길’ 학교 뒷산의 숲을 걸으면서 얼마 만인가. 어저께는 빈 시간에 학교 뒷산을 올랐다. 9월이지만 여전히 산은 푸르고 그늘은 두터웠다. 사람들의 자취로 익숙한 옛길을 걷다가 문득 왼쪽으로 벗어난 작은 길 하나를 발견했다. 무심코 그리로 발걸음을 옮겼다. 야트막한 언덕을 넘자 오종종한 하얀 꽃의 물결이 수줍은 듯이 이어지고 있는 메밀밭이었다. 물론 이효석이 소설에서 묘사한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은 아니다.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없어서기도 하지만, 어쩐지 그 풍경이 주는 ‘2% 부족한 느낌’ 때문이다. 메밀꽃은 화려하지도, 꽃송이가 크지도 않다. 작고 보잘것없는 꽃들이 어우러져 지어내는 수더분함이 바로 메밀꽃의 아름다움인 것이다. 내겐 ‘낯선 길’이었지만 그것도 사람들이 숱하게.. 2021. 9. 7.
초가을 풍경, 릴케의 ‘가을날’ 릴케의 시 ‘가을날’의 초가을 풍경 서둘러 계절이 바뀌고 있는데도 우리는 무심하게 그걸 바라보고만 있다. 가을이 오고 있다. 일주일 후면 한가위인데도 고단한 삶이 서툰 감상을 허용하지 않는 것일까. 일교차가 크다고는 하나 한낮의 수업도 그리 힘들지 않다. 열어놓은 출입문과 창문 사이로 드나드는 바람의 손길은 부드럽고 살갑다. 그러나 여전히 창밖의 햇볕은 따갑다. 여름내 타오르던 정염(情炎)은 시방 마지막 갈무리를 위하여 자신을 태우고 있는가. 익어가는 것들을 위한 ‘남국의 햇볕’을 노래한 릴케의 시구를 떠올리면서 아이들에게 이 뜨거운 햇살의 존재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늦여름, 초가을의 햇볕은 모든 작물의 성장에 가장 중요한 요소다. 높은 기온과 풍부한 일조량이 풍작을 예비하는 조건이기 때문이다. 햇볕은.. 2021. 9. 7.
메밀꽃의 발견 다시 바라보는 메밀꽃, ‘이미지’와 ‘현실’ 사이 사물에 대한 우리의 기억은 매우 선택적인 것처럼 느껴진다. 내 기억 속에서 접시꽃은 도종환 시인의 ‘접시꽃 당신’이 나온 이후 어느 날부터 존재하기 시작했던 듯하다. 내 발길이 닿는 곳마다 본래 접시꽃이 그렇듯 지천으로 피어 있었던 것인지, 시인의 시가 세상에 나온 이래, 집중적으로 접시꽃이 심어진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후자의 가능성은 희박하다. 따라서 새로운 ‘접시꽃의 발견’의 책임은 마땅히 내 기억에 있는 것이다. 일상에는 존재하되, 기억 속에서는 존재하지 않던 사물도 새롭게 부여된 어떤 동기로 말미암아 비로소 존재하기 시작하는 것일까. [관련 글 : 접시꽃, 기억과 선택 사이] 어느 해 봄은 흐드러지게 핀 찔레꽃이 유난히 자주 눈에 밟혔는데, 올.. 2021. 9. 3.
[사진] 회룡포의 ‘청소년 우리 강 체험’ 행사 ‘청소년 우리 강 체험 행사’가 지난 토요일(23일) 예천 회룡포 백사장에서 열렸다. 운하반대교수모임과 환경단체 등이 구성한 ‘4대강 1만 체험 333추진 본부’가 “여름방학을 맞아 아이들이 모래 강의 자정 능력과 우리 강의 진정한 모습과 가치를 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 행사다. 이 행사는 지난 3월 26일 베풀어진 행사에서 힌트를 얻어 기획되었다 한다. 행사장인 회룡포는 텔레비전 드라마와 ‘1박 2일’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널리 알려진 명승지로 하회마을에 못지않은 ‘물돌이[하회(下回)]마을’이다. 마을을 감아 돌며 흐르는 내성천의 맑은 물과 드넓은 백사장 등을 지닌 이 육지 속의 섬은 세계자연유산 등록이 추진되는 명승지다. 그러나 이 천혜의 절경은 조만간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 내성천 상류인 영주에서 .. 2021. 7.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