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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임시정부 노정을 따라18

4시간 만에 일본군 궤멸시킨, 일본육사 출신 독립군 대장 [대한민국 임시정부 노정을 따라 ④] 항저우, 전장 시기의 임정 답사 둘째 날, 자싱(嘉興)과 하이옌(海鹽)을 거쳐 우리는 어둠 살이 내리고 있는 항저우(杭州)에 닿았다. 하나둘 불을 켜고 있는 도시로 들어가면서 나는 상하이를 떠나 이 낯선 도시로 스며들어야 했던 1932년의 임시정부(아래 임정)와 백범을 비롯한 요인들을 생각했다. 항저우는 장강(長江) 델타 지역에 자리 잡은 저장성(浙江省)의 성도(省都)다. 중국의 7개 고도(古都)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는 이 도시는 수나라 때 건설된 대운하의 남쪽에 자리 잡고 있어 일찍부터 운하를 이용한 상업이 발달했다. 10세기에 항저우는 난징(南京)과 청두(成都)와 함께 남송(南宋) 문화의 중심지였다. 12세기 초부터 1276년 몽골이 침입하기까지는 남송의 수도였고.. 2019. 3. 6.
부음에서도 밝히지 못한 이름, 말을 잃었다 중국 일본군 위안소 유적 답사기…‘위안부’ 할머니들의 잇따른 죽음에 부쳐 역사란 현재와 이어지는 ‘연속적’인 시간이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는 그것을 ‘단속적(斷續的)’인 시간, 때로는 화석화된 것으로 이해하기 쉽다. 엄정한 역사의 현장이 아닌, 교과서나 이론으로 배우는 역사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때로 우리는 특정한 시간과 공간을 통해서 역사의 실체를 손에 닿는 것처럼 느끼기도 한다. 교과서 속의 역사가 지금, 현재의 시공으로 이어지는 살아 있는 시간이라는 걸 말이다. 그것은 기왕의 앎 따위를 뛰어넘는 명징한 깨달음으로 다가오기도 하는 것이다. 난징에서 만난 일본군 위안소 어쨌든 지나간 역사의 자취를 찾아 떠난 길이기는 했다. ‘청년 백범’에서 실시한 제4기 답사,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 김구.. 2019. 3. 5.
37살의 나이 차… 백범과 중국 여인의 ‘특별한 동거’ [대한민국 임시정부 노정을 따라 ③] 자싱 피난처에서의 백범과 주애보 송칭링능원을 끝으로 청년 백범 답사단은 상하이를 떠났다. 4·29 윤봉길 의거 이래 일제에 쫓기던 백범이 마침내 상하이를 탈출해 도착한 저베이(浙北) 평원의 공업 도시 자싱(嘉興)으로 가는 길이다. 상하이에서 1시간 반, 95km를 달려 자싱으로 들어섰는데 도시의 풍경이 매우 낯익어 마치 한국의 어느 소도시로 들어서는 느낌이었다. 자싱은 저장성(浙江省) 북부 경항(京杭) 대운하 연안에 있는 수향(水鄕), 곧 물의 도시다. 수만의 사람들이 수나라 때 만든, 전장(鎭江)에서 자싱을 거쳐 항저우(杭州)에 이르는 이 운하에 배를 띄워 놓고 물 위에서 살았다. 자싱에는 저장성 3대 명호(名湖) 가운데 하나인 남호(南湖)가 이 운하와 닿고 있다... 2019. 3. 4.
두 아들에게 남긴 윤봉길의 편지…북받침을 어찌하랴 [대한민국 임시정부 노정을 따라 ②] 백범의 한인애국단과 윤봉길의 훙커우 의거 상하이의 임시정부 청사 다음 여정은 훙커우(虹口)로 더 잘 알려진 루쉰(鲁迅) 공원이었다. 1927년 상하이로 온 루쉰은 생전에 이 공원을 즐겨 산책하였는데 1956년 그의 유해가 이곳으로 이장되면서 기념관이 만들어졌고 1989년에는 공원 이름도 아예 루쉰으로 바뀐 것이다. 일찍이 영국 원예가가 설계한 서양식 정원 양식의 이 공원을 일약 세계에 알린 이는 스물다섯 살의 조선 청년 윤봉길(尹奉吉, 1906~1932)이다. 그가 일본군의 전승 기념식장에 던진 폭탄이 만주사변 이래 파죽지세로 중국 중심부로 진격하고 있던 일제의 기를 꺾어 놓았던 것이었다. 윤봉길, 진격하는 일제에 폭탄을 던지다 윤봉길은 만보산(萬寶山) 사건과 만주사.. 2019. 3. 3.
후미진 중국 골목에 한국인이 줄을 서는 이유 [대한민국 임시정부 노정을 따라 ①] 상하이, 1919년에서 1932년까지 광복 70년, 서른여덟 명의 ‘청년 백범 4기’ 답사단은 지난 1월 23일부터 27일까지 대한민국 임시정부(아래 임정) 자취를 찾아가는 여정에 올랐다. 1919년 4월, 상해에서 수립된 임정의 중국 내 이동 경로는 항저우(杭州), 전장(鎭江), 창사(長沙), 광저우(廣州), 류저우(柳州), 치장(綦江)을 거쳐 충칭(重慶)까지다. 그러나 우리의 여정은 우선 창사로 옮기기 직전의 난징(南京)까지다. 지난 세기, 백범을 비롯한 임정 요인들이 배를 타고, 혹은 기차를 타거나 걸어서 옮겨 다닌 수백, 수천, 수만 리의 길을 21세기의 후손들은 비행기로 날아 전세 버스를 타고 따른다. 그들이 일제에 쫓기며 꾸려야 했던 풍찬노숙 16년(191.. 2019. 3. 2.
<백범일지>를 다시 읽으며 임시정부 노정(路程)을 따라 2015년 1월에 나는 4박 5일간(23~27) ‘청년 백범’과 함께 임시정부 노정을 따르는 4기 답사에 참여했다. 상하이에 세워진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일제의 압박과 중일전쟁의 전개에 따라 무려 일곱 번이나 옮겨가야 했다. 답사단은 상하이에서 출발하여 자싱(嘉興), 하이옌(海鹽), 항저우(杭州), 난징(南京)에 이르는 여정을 통해 1920~30년대에 걸쳐 임정이 걸어야 했던 고통의 세월을 확인할 수 있었다. 비록 그게 거의 1세기 뒤에 이루어진 수박 겉핥기 답습에 불과했다 할지라도 말이다. 답사는 임정이 26년 동안 거친 도시가 아홉 군데나 되어 2차로 나누어 진행되었다. 그러나 나는 아쉽게도 뒤에 진행된 2차 답사에는 다른 사정으로 참여하지 못했다. 언젠가 다시 2차 답사로 .. 2019. 3.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