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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역사 공부 「오늘」198

[오늘] 2·28-대구 고교생들, 이승만 선거 방해 공작에 맞서 일어서다 1960년 2월 28일, 대구에서 고교생 민주 시위 1960년 2월 28일 낮 12시 50분, 대구의 고교생들이 정부와 여당(자유당)의 부당한 선거 개입에 항의하며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이들은 시내 중심가로 진출하여, “횃불을 밝혀라, 동방의 별들아”, “학원의 자유를 달라”, “학원을 정치 도구화하지 말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이튿날까지 계속된 시위는 3·15 마산의거와 4·19혁명으로 이어졌다. 1960년, ‘빈사의 민주주의’ 1960년, 13년째 이어진 이승만 독재로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빈사 상태였다. 발췌개헌(1952)과 사사오입 개헌(1954)으로 장기 집권을 위한 권력을 강화한 이승만은 1960년 3월 15일 제4대 대통령선거와 제5대 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었다. 자.. 2024. 2. 28.
[오늘] 은둔의 나라 조선, 강화도 조약으로 ‘나라를 열다’ [역사 공부 ‘오늘’] 1876년 2월 27일, 강화 연무당에서 조일수호조규 체결 1876년 오늘(2월 27일), 강화산성 연무당에서 조선의 접견대관 판중추부사 신헌(申櫶, 1811~1884)과 일본의 전권대사 구로다 기요타카(黒田清隆, 1840~1900, 2대 내각 총리대신)는 조일수호조규를 체결했다. 흔히들 강화도조약, 병자수호조규 등으로 불리는 이 통상조약은 조선이 일본과 맺은 최초의 근대적 조약이면서 불평등조약이었다. 당시 조선은 흥선대원군이 프랑스(병인양요·1866)와 미국(신미양요·1871)의 통상요구를 물리치고 전국에 척화비를 세우는 등 통상 수교 거부정책을 견지하고 있었다. 그것은 제국주의 세력이 강요하는 자본주의 세계 질서로의 편입을 거부하는 이른바 ‘쇄국(鎖國) 정책’이었다. 은둔의 나.. 2024. 2. 27.
[오늘] 나치에 항거한 백장미단, 히틀러의 칼날 아래 지다 [역사 공부 ‘오늘’] 1943년 2월 22일, 백장미단의 숄 남매 등 처형되다 무릇 모든 압제에는 저항이 존재한다. 그것은 때로 실낱같은 의지로 명맥을 이어가기도 하고 때론 거대한 용암처럼 분출하기도 한다. 그러나 활동의 규모로 저항의 의지를 재단할 수는 없다. 활동의 내용과 무관하게 그것은 늘 죽음을 불사하는 담대한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나치 범죄에 맞선 백장미 세계 제2차 대전 시기의 저항으로는 우리의 독립투쟁이나 프랑스의 레지스탕스의 예가 있지만, 독일에서 나치와 맞서 싸웠던 ‘백장미단’(독일어 Weiße Rose 바이세 로제)의 경우는 좀 특이하다. 이들의 저항은 자국을 점령하거나 지배한 적국과 맞선 게 아니라 유대인 학살 등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자국의 지배자를 상대로 했기 때문이다. 폴.. 2024. 2. 22.
[오늘] 재일 교포 권희로, 엽총으로 야쿠자를 살해하다 [역사 공부 ‘오늘’] 1968년 2월 20일 권희로 사건 1968년 2월 20일, 시즈오카(靜岡)현 시미즈(淸水)시의 클럽 밍크스에서 권희로(權禧老,1928~2010)는 일본 사회의 폭력배, 이른바 ‘야쿠자’ 2명을 엽총으로 사살했다. 야쿠자가 채권자의 부탁을 받아 빚 독촉을 하면서 ‘조센진, 더러운 돼지 새끼’라 욕하자 격분한 것이었다. 범행 후 그는 실탄과 다이너마이트(무기의 출처에 대해 그는 죽을 때까지 입을 다물었다.)를 들고 차량으로 도주하여 현장에서 45km 떨어진 시즈오카(靜岡)현 스마타쿄(寸又峽)의 후지노미 온천여관에 들어갔다. 그는 이후 여관 주인과 투숙객 13명을 인질로 잡고 장장 88시간의 인질극을 벌였다. 텔레비전과 신문으로 매일같이 중계된 이 인질극을 통해 권희로는 자신이 일본에.. 2024. 2. 20.
[오늘] ‘지구가 돈다’, 코페르니쿠스 태어나다 [역사 공부 ‘오늘’] 1473년 2월 19일-니콜라스 코페르니쿠스의 출생 2월 19일은 1473년, 폴란드 출신 독일의 천문학자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 1473~1543)가 태어난 날이다. 코페르니쿠스는 중세 교회가 지지해 온 세계관 ‘천동설’을 부정하고 지동설을 주장함으로써 근대 자연과학의 획기적인 전환을 끌어낸 학자다. 그 무렵 유럽에서는 모든 천체가 지구 주위를 돈다는 지구중심설, 즉 ‘천동설(天動說)이 유일하게 공인된 세계관이었다. 일찍이 2세기에 클라우디우스 프톨레마이오스(Claudius Ptolemaios)에 의해 체계화된 천동설은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고 인간은 그 위에 사는 존엄한 존재이며 달 위의 천상계는 영원한 신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던 중세의 우주관.. 2024. 2. 19.
[오늘] ‘전사’이고 싶었던 시인 김남주 잠들다 [역사 공부 ‘오늘’] 1994년 2월 13일, 시인 김남주 지다 1994년 오늘(2월 13일), 자신을 ‘전사’라고 자칭했던 시인 김남주(金南柱, 1946~1994)가 파란 많은 저항의 삶을 마감했다. 이날 새벽 2시 30분, 그는 서울시 종로구 평동의 고려병원에서 췌장암으로 쓰러졌다. 9년 3개월간 복역하고 출옥해 온전히 여섯 해를 채 살지 못하고서였다. 향년 48세. 해남의 산골에서 태어나 이른바 지역 명문 광주제일고등학교에 입학했으나 김남주는 이듬해 입시 위주의 획일적인 교육에 반대하여 스스로 학교를 떠났다. 부모의 요구를 관행적으로 따르는 여느 고교생의 삶과는 일찌감치 작별한 셈인데, 그것은 그가 선택한 반골의 삶을 예고한 것인지도 모른다. 저항과 투쟁의 삶, 그는 전사이고 싶어 했다 검정고시를.. 2024. 2. 13.
[오늘] 국군, 거창에서 양민 719명을 학살하다 [역사 공부 ‘오늘’] 1951년 2월 9일, 국군 11사단 9연대 3대대, 거창 양민 719명 학살 산청과 함양에서 무려 705명의 양민을 학살한 뒤 인근 거창군으로 이동한 국군 11사단 9연대(연대장 대령 오익경) 3대대(대대장 소령 한동석)는 1951년 오늘(2월 9일), 거창군 신원면 덕산리 청연마을로 들어갔다. 군인들은 가옥에 불을 지르고 마을 사람들을 눈 쌓인 마을 앞들로 끌어냈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을 겨냥해 소총과 기관총을 무차별 난사했다. 눈 덮인 논들은 순식간에 검붉은 피로 얼룩졌다. 학살은 그렇게 시작되었고 마을 사람 84명이 순식간에 목숨을 잃었다. (제1차 집단학살, 청연마을 사건) 빨치산 토벌 목적의 견벽청야(堅壁淸野) 작전을 수행한다는 명목의 이 학살은 이후 11일까지 사흘 동.. 2024. 2. 9.
1950년 매카시 선풍의 시작과 2016년의 한국 조지프 매카시 “국무부 공산주의자로 가득차 있고, 내 손에 그 명단 있다 ” “나는 국무부가 공산주의자로 가득 차 있다고 주장하는 바입니다. 내 손에는 그 205명의 명단이 있습니다.” - 조지프 매카시 “1950년 54년 사이에 일어난, 공산주의 혐의자들에 반대하는 떠들썩한 반대 캠페인으로, 대부분의 경우 공산주의자와 관련이 없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블랙리스트에 오르거나 직업을 잃었다.” - 옥스퍼드 영어사전(Oxford English Dictionary) ‘매카시즘’ 항목 설날 아침에 이런 이야기는 좀 거시기하다. 그러나 내일(2월 9일)이 1950년 미국의 조지프 매카시 상원의원이 국무부에 수백 명의 공산주의자가 있다고 연설함으로써 이른바 ‘매카시즘’이 시작된 날이니 미국을 휩쓴 공산주의자 색출 열.. 2024. 2. 9.
[오늘] 만주와 한국 지배권 두고 러시아와 일본이 맞붙다 [역사 공부 ‘오늘’] 1904년 2월 8일, 도고의 일본함대 뤼순 군항 기습으로 ‘러일전쟁’ 발 1904년 일본의 뤼순항 기습으로 러일전쟁 발발 1904년 2월 8일 밤, 도고 헤이하치로(東鄕平八郞)의 일본함대가 뤼순(旅順) 군항을 기습함으로써 러일전쟁의 서막이 올랐다. 기습 공격으로 전쟁을 시작했지만, 정작 일본은 2월 9일, 인천 앞바다에 있던 두 척의 러시아 군함을 격침한 이튿날인 10일에야 선전을 포고하였다. 20세기 초반을 장식한 이 전쟁은 한국과 만주(중국 동북지방)의 분할을 둘러싸고 러시아와 일본이 격돌한 것이었다. 그러나 경제적 이익을 두고 나누어진 거대 강대국 동맹 간의 충돌이라는 점에서 보면 영일동맹과 러시아·프랑스 동맹을 배후로 한 제1차 세계대전의 전초전이었다. 극동의 국제적 대립.. 2024. 2. 8.
[오늘] 국군, 산청·함양 양민 705명을 학살하다 [역사 공부 ‘오늘’] 1951년 2월 7일, 국군 11사단 9연대 3대대 산청·함양 양민 학살 1951년 2월 7일은 음력 신묘(辛卯)년 정월 초이틀이었다. 전년도에 발발한 전쟁이 중공군이 개입하면서 1·4후퇴로 이어지고 있던 때였다. 이날, 지리산 줄기의 두메산골인 가현, 방곡(산청군 금서면), 점촌마을(함양군 휴천면)과 서주리(함양군 유림면) 등 네 개 마을의 양민 705명은 느닷없이 들이닥친 국군 병사들에게 떼죽음을 당하고 세 마을 133가구가 잿더미가 되었다. 이 끔찍한 범죄는 이틀 후에 거창군 신원면 일대에서 자행된 ‘거창 양민 학살사건’의 서막이었다. 산청·함양을 거쳐 거창군으로 이동한 같은 부대는 1951년 2월 9일부터 11일까지 사흘 동안 거창 지역의 양민 719명을 무차별 학살한 것이.. 2024. 2. 7.
[오늘] 1933년 오늘-히틀러 총리 등장, 홀로코스트의 서막과 <나의 투쟁> 재출간 [역사 공부 ‘오늘’] 1933년 1월 30일, 나치당 아돌프 히틀러 바이마르 공화국 총리로 1933년 1월 30일, 바이마르 공화국 대통령 힌덴부르크는 나치당의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 1889~1945)를 총리로 임명하였다. 1929년의 경제 대공황 이후 큰 타격을 입은 경제와 민주 정당들이 속수무책인 가운데 나치당이 사회민주당에 이어 제2당으로 떠오르는 등의 정치적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서였다. 나치는 1926년 총선에서 선전, 괴벨스와 괴링 등 12명을, 1932년 총선에서는 전체 득표의 1/3을 차지하여 230명을 국회에 진출시켜 제1당이 되었다. 당시의 정치·경제적 혼란 속에서 히틀러는 동유럽을 정복하고 게르만 민족의 생존권을 동방으로 확장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해 공산주의를 혐오하.. 2024. 1. 30.
[오늘] 1915년 연해주 13도의군 도총재 유인석 순국하다 [역사 공부 ‘오늘’] 1915년 1월 29일, 연해주 13도 의군 도총재 유인석 순국 1915년 1월 29일, 중국 요녕성 관전현 방취구에서 국내외 의병의 단일 지휘계통을 지향한 연해주 13도의군(十三道義軍) 도총재를 지냈던 의병장 의암(毅菴) 유인석(柳麟錫, 1842~1915)이 마지막 숨을 거두었다. 1895년 을미의병의 최고 지도자로 호좌(湖左) 의병진(陣)을 이끈 지 꼭 20년 만에 그는 망명지에서 쓸쓸하게 눈을 감았다. 향년 74세. 의암 유인석은 강원도 춘천 출신이다. 그는 일찍이 위정척사(衛正斥邪)사상의 원류인 화서(華西) 이항로의 문하에서 수학하여 화서학파의 정통 도맥(道脈)을 이은 위정척사론자였다. 그는 화서의 문하에서 김평묵과 유중교로부터 존화양이(尊華攘夷) 사상을 익혔는데 만동묘 철.. 2024. 1.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