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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역사 공부 「오늘」196

[오늘] 118년 전, 영등포에서 ‘경부철도’ 기공식 열리다 [역사 공부 ‘오늘’] 1901년 8월 20일, 영등포에서 경부철도 기공식 거행 1901년 8월 20일, 일본 자본 회사인 경부 철도 주식회사는 서울 영등포에서 경부철도 기공식을 열었다. 한 달 뒤인 9월 21일에는 종점인 부산 초량에서도 공사에 들어갔다. 경부철도는 4년 후인 1904년 12월 27일 완공되었고, 1905년 1월 1일을 기하여 전 노선의 영업이 시작되었다. 개통식이 거행된 것은 그해 5월 25일에 서울 남대문 정거장(지금의 서울역) 광장에서였다. 경부선의 부설은 두말할 것 없이 일제의 한반도 침략 정책 수행의 구체적 발판이었다. 경부선 철도건설에 관한 문제가 조약 문서로 나타난 것은 1894년 ‘한일잠정합동조관(韓日暫定合同條款)’에서다. 이후 일제는 1898년 ‘경부철도합동조약(京釜鐵道.. 2019. 8. 20.
[오늘] 콜럼버스, ‘대서양 항해 탐험’ 첫 항해 출범 [역사 공부 ‘오늘’] 1492년 8월 3일, 콜럼버스 ‘대서양 항해 탐험’ 첫 출범 1492년 8월 3일, 크리스토퍼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 1451∼1506)는 산타 마리아(Santa María), 핀타(Pinta), 니나(Niña)호 등 세 척을 배를 이끌고 스페인 남쪽 팔로스(Palos)항을 떠나 ‘대서양 항해 탐험’의 첫 항해에 나섰다. ‘대서양 항해 탐험’ 출범 이탈리아 제노바 출신의 이 탐험가는 대서양 항해 탐험이 성공하면 기사와 제독 작위, 발견한 땅을 다스리는 총독의 지위, 얻은 총 수익의 10분의 1이라는 실현 가능성 없는 조건을 제시하여 1484년 포르투갈의 왕 주앙 2세를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 같은 조건으로 스페인의 이사벨 여왕도 설득하지 못했지만, 그는 .. 2019. 8. 2.
[오늘] 충북 영동 노근리, 미군이 민간인을 무차별 학살하다 [역사 공부 ‘오늘’] 노근리 민간인 학살 사건(1950.7.26.∼7.29.) 한국전쟁 발발 한 달 만인 1950년 7월 26일부터 7월 29일까지 미군 제1기갑사단은 충북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 지역에서 무고한 지역의 양민들을 무차별 학살했다. 미군은 피란을 떠나는 민간인들을 한 데 불러 모은 뒤, 비행기 폭격과 기관총탄을 퍼부었다. 이른바 ‘노근리 민간인 학살 사건(No Gun Ri Massacre)’이다. 한국전쟁 개전 초기에 인민군과의 교전에서 패배한 이후 충격과 혼란에 빠져 후퇴를 거듭하고 있던 미 24사단 병력이 새로 도착한 1기갑사단에 영동 방어진지를 인계한 것은 7월 22일이었다. 거침없이 남진을 계속한 인민군에 밀려 미군 1기갑사단도 후퇴하기 시작했다. 미군은 7월 23일 정오, 영동읍 .. 2019. 7. 26.
[오늘] 남북한 당사자 간 최초 합의 ‘7·4 남북공동성명’ 발표 [역사 공부 ‘오늘’] 1972년 7월 4일, 서울과 평양에서 각각 발표 1972년 7월 4일 오전 10시에 분단 이후 남북한 당사자 간 최초의 합의문서인 ‘7·4 남북공동성명’이 각각 서울과 평양에서 발표되었다. 7·4 남북공동성명은 분단 27년 만에 남북이 최초로 통일문제를 합의하여 발표한 역사적 공동성명이었다. 7·4 남북공동성명, 분단 이후 첫 합의문서 이날, 남과 북은 “서울의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1972년 5월 2일부터 5월 5일까지 평양을 방문하여 평양의 김영주 조직지도부장과 회담을 진행하였으며, 김영주 부장을 대신한 박성철 제2 부수상이 1972년 5월 29일부터 6월 1일까지 서울을 방문하여 이후락 부장과 회담을 진행했다.”는 경과보고에 이어 ‘조국통일원칙’과 남북의 통일문제 해결을 위.. 2019. 7. 4.
[오늘] 3·1운동의 ‘마중물’, 2·8독립선언도 100돌을 맞는다 [역사 공부 ‘오늘’] 1919년 2월 8일, 동경유학생들 ‘조선 청년 독립선언’ 올해는 3·1운동 100주년의 해지만, 100돌을 맞이하는 게 3·1운동만은 아니다. 기미독립선언 한 달 전에 동경에서 선포된 2·8독립선언과, 한 달쯤 뒤인 4월 11일에 중국 상하이에서 이루어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도 역시 100주년을 맞는다. 3·1운동은 2·8독립선언의 영향을 받아 거족적인 민족운동으로 발전했고, 이는 다시 망명지 상하이에서의 임정 수립으로 이어졌다. 동경유학생들, '조선청년독립단'의 이름으로 '독립선언' 동경유학생인 와세다(早稻田)대학의 최팔용(崔八鏞) 등이 조직한 조선청년독립단의 이름으로 '독립선언서'가 발표된 것은 1919년 2월 8일 오후 2시 도쿄의 조선기독교청년회관에서였다. 이날 열린 조.. 2019. 2. 8.
[오늘] 조현병, 딸의 실종, 이혼... 대한제국 마지막 황녀의 삶 [역사 공부 ‘오늘’] 1962년 1월 26일, 덕혜옹주 38년 만의 환국 1962년 1월 26일, 소학교 5학년이던 1925년에 볼모로 일본에 끌려갔던 고종의 외동딸 덕혜옹주(1912~1989)가 38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왔다. 외로움과 향수 때문에 조발성 치매증을 앓던 이덕혜는 대마도(對馬島) 번주(藩主)의 아들 소 다케시(宗武志)와 강제 결혼했다가 이혼당한 뒤에야 그리던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마지막 황녀, 38년 만에 귀국하다 나라를 잃은 왕족들의 삶은 그들 조국의 운명처럼 파란만장했다. 이들의 삶 앞에 ‘비운’이라는 형용이 관습적으로 쓰이는 이유다. 제국을 선포하고 스스로 황제가 되었지만, 고종(1852~1919)은 헤이그 밀사 사건으로 강제퇴위 당했고, 그 아들 순종(1874~1926)은.. 2019. 1. 25.
[오늘] 90년 전 오늘, 식민지 시기 최대규모 ‘원산총파업’ 돌입 [역사 공부 ‘오늘’] 1929년 1월 13일, 원산노동연합회 총파업 선언 1929년 1월 13일, 함경남도 원산에서 원산노동연합회(원산노련) 산하 노동조합원 2200여 명이 참여한, 일제 식민지기 최대 규모의 파업이 시작되었다. 1928년 9월에 있었던 문평제유공장 노동자의 파업에서 비롯된 이 대규모 연대 파업은 80일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지역의 모든 부문 노동자와 총자본이 맞붙은 유례없는 이 파업 투쟁은 일제의 노동정책은 물론 이후 노동운동의 활동 방식과 노선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일본인 감독의 노동자 구타로 촉발 원산총파업은 1928년 9월에 있었던 문평제유(製油)공장 노동자의 파업으로부터 비롯되었다. 함경남도 덕원군 문평리 소재, 영국인이 경영하는 문평 라이징 선(Rising Sun) 석유.. 2019. 1. 12.
[오늘] 김산 자서전 <아리랑>의 저널리스트 님 웨일스 떠나다 [역사 공부 ‘오늘’]1997년 1월 11일, 작가 헬렌 포스터 스노 떠나다 1997년 1월 11일,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인 헬렌 포스터 스노(Helen Foster Snow, 1907~1997)가 미국 코네티컷주 길포드에서 세상을 떠났다. 향년 90세. 그는 남편 에드거 스노와 함께 1930년대 격동기의 중국 혁명가들을 취재하여 〈붉은 중국의 내부(Inside Red China)〉 등 여러 권의 저서를 남겼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이 여인은 본명 헬렌 포스터 스노 대신 ‘님 웨일스(Nym Wales)’라는 필명으로 더 친숙하다. 왜냐하면, 그는 1930년대에 중국에서 활동한 한국인 독립운동가 김산(본명 장지락, 1905~1938)의 고통스러운 삶을 기록한 자서전 의 저자이기 때문이다. 미국 유타주에서 변호.. 2019. 1. 9.
[오늘] 97년 전 오늘, ‘낭만주의의 화원’인 <백조> 창간 [역사 공부 ‘오늘’] 1922년 1월 9일, 문예 동인지 '백조(白潮)' 창간호 발행 1922년 1월 9일, 홍사용(1900~1947), 박종화(1901~1981), 나도향(1902~1927), 박영희(1901~?) 등의 동인들이 참여한 순수 문예 동인지 창간호가 발행되었다. 편집인은 홍사용, 발행인은 일제 검열을 피해 미국인 선교사인 배재학당 교장 아펜젤러(H. D. Appenzeller, 1889~1953)가 맡았다. 는 휘문의숙 출신의 박종화·홍사용과 배재학당 출신의 나도향·박영희 등 문학청년들의 교제에서 비롯되었다. 3·1운동의 실패로 절망에 빠져 있던 이들은 젊은이들이 모여 문예와 사상을 펼 수 있는 잡지를 만들고자 하였다. 마침 김덕기·홍사중(홍사용의 육촌 형)과 같은 후원자를 만나 출판사 .. 2019. 1. 9.
[오늘] ‘관제 뉴스 공급’ 시대, 퇴장하다 [역사 공부 ‘오늘’] 1994년 12월 31일, 종영 1994년의 마지막 날, 대한민국 정부가 1963년부터 제작하여 영화관에 보급, 상영했던 가 종영되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한때는 대중매체에 소외되어 있었던 국민에게 뒤늦게나마 뉴스를 공급함으로써 소임을 다했던 이 ‘관제’ 뉴스는 2040호를 끝으로 종영했다. 종영, 관제 뉴스의 종말 를 폐지해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된 것은 1980년대 말이었다. 집집이 텔레비전 등의 매체가 보급되고 인터넷 시대가 가까워졌는데 이미 보고들은 뉴스를 강제로 다시 보게 한다는 지적이 뒤따르면서였다. 1994년 8월 와 문화영화를 폐지하는 영화진흥법안이 최종 확정된 데 이어 이날, 는 마침내 종영된 것이었다. 는 TV 보급이 보편화 되기 전, 국민에게 나라 소식을 알리고.. 2019. 1. 1.
[오늘] 장태수, ‘원수의 돈’ 일제 은사금 거부하고 목숨을 거두다 [역사 공부 ‘오늘’] 1910년 12월 28일, 장태수 24일 단식으로 순국하다 1910년 12월 28일(음력 11월 27일) 수요일, 전북 김제 금구의 남강정사(南崗精舍)에서 일유재(一逌齋) 장태수(張泰秀, 1841∼1910) 선생이 예순아홉 살을 일기로 순국하였다. ‘불충과 불효한 죄를 죽음으로 씻는다’고 하며 단식에 든 지 24일 만이었다. 장태수는 전북 김제 출신으로 내부협판 장한두의 아들이다. 본관은 인동, 자는 성안(聖安), 호는 일유재(一逌齋). 1861년 약관에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출사(出仕)한 이래 사간원 정언, 사헌부 지평 등 청요직(淸要職)을 거쳐 정3품 당상관인 통정대부에 이르렀다. 일유재, 24일 단식 끝에 순국 1895년 단발령이 내리자 장태수는 벼슬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돌아왔.. 2018. 12. 29.
[오늘] “우리는 우리 장단에 춤추자” 남북 모두가 존경한 독립운동가 별세 [역사 공부 '오늘'] 1950년 12월 10일, 납북된 우사 김규식 만포진에서 별세 1950년 12월 10일, 우사(尤史) 김규식(金奎植, 1881~1950)이 평안북도 만포진 근처에서 오래 앓아온 심장병과 천식 등의 병세가 악화하면서 파란 많은 생애를 마감했다. 향년 69세. 그는 좌우합작과 남북협상을 주도하며 통일 자주 국가를 지향했고 중도 노선을 추구한 정치가였다. 남북협상의 실패로 꿈을 접어야 했지만, 그는 남북 모두에서 존경받은 민족지도자였다. 1950년 12월 10일, 우사(尤史) 김규식(金奎植, 1881~1950)이 평안북도 만포진 근처에서 오래 앓아온 심장병과 천식 등의 병세가 악화하면서 파란 많은 생애를 마감했다. 향년 69세. 그는 좌우합작과 남북협상을 주도하며 통일 자주 국가를 지향.. 2018. 12.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