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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여행, 그 떠남과 이름의 기록128

[시골 사람 서울 나들이 ⑥] 창경궁, 한때 ‘원(苑)’이었던 궁궐, 왕실 가족사도 애잔하다 고궁 산책 ② 인현왕후와 장희빈,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의 이야기가 살아 있는 창경궁(昌慶宮) *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덕수궁을 나와 남대문시장에서 저녁을 먹고 창경궁 야간 개장 시간 7시에 맞추어 홍화문(弘化門) 앞에 닿았다. 뉴스로 고궁의 야간 개장 소식을 듣긴 했지만, 고궁을 밤에 찾게 되니 은근히 그 밤 풍경이 자못 기대됐다. 디에스엘아르(DSLR) 카메라를 준비했지만, 어두워지면 감도(ISO)를 높여서 찍으려고 플래시는 가져오지 않았다. 창경궁은 조선 왕조 9대 임금 성종이 1483년 창덕궁 동쪽에 세운 궁궐이다. 창경궁은 1418년 세종이 고려의 남경 이궁(離宮:예전에, 임금이 궁중 밖으로 나들이할 때 머무는 곳을 이르던 말) 터에 .. 2023. 1. 22.
[시골 사람 서울 나들이 ⑤] 덕수궁, 망국과 격변의 시대를 지켜보다 *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고궁 산책 ① 교과서에서 ‘석조전’으로 미리 만났던 덕수궁(德壽宮) 서울의 고궁을 처음 가 본 건 아마 1960년대 초등학교 수학 여행에서였을 것이다. 그때도 경복궁이나 덕수궁을 들렀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복원 전의 창경궁에서 동물들을 구경한 게 애매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고교 시절에 친구들과 어울려서 고궁 한곳을 들렀는데, 거기가 덕수궁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곤 거의 수십 년을 건너뛰어 덕수궁을 찾은 게 2018년 5월이다. 시골 사람이 서울에 가는 건 가물에 콩 나듯 한 일이고, 간다고 해도 여유롭게 고궁 나들이를 할 만큼 한가롭지 못하다. 일부러 작정하고 찾지 않으면 사진으로나 고궁을 살펴볼 수 있을 뿐이라는.. 2023. 1. 17.
[시골 사람 서울 나들이 ④]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전람회 *PC에서는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지난 7월 21일 나는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 예약해 피부과 진료를 받았다. 오전 9시 진료를 마치고 나오니 10시가 채 되지 않았다. 연차를 내고 나온 아들아이와 함께 병원을 나서니 추적추적 여름비가 내리고 있었다. 약국에 가서 약을 받아 나오자, 아이가 국립현대미술관에 가보자고 제의했다. 그간, 서울에 들를 때마다 우리는 서울과 주변의 명소를 찾곤 했다. 5월에는 가족들 모두가 강화도 일원을 들렀고, 국립수목원과 리움미술관을 돌아보았다. 국립박물관과 역사박물관은 이전에 둘러보았지만, 정작 리움도, 간송미술관도 가보지 못한 나는 아이를 앞세우고 거기 들른 것이다.[관련 글 : 성공회에서 강화도에 ‘한옥 성당’을 지은 .. 2022. 12. 30.
[시골 사람 서울 나들이 ③] 시화호와 대부도의 낙조 *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연휴의 마지막 날인 10일은 대체휴일이었다. 그날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을 예약했다는 아들아이의 전갈을 받고 우리 내외와 딸애는 7일 저녁 케이티엑스로 상경했다. 마중 나온 아이와 함께 바로 집으로 들어가 야식으로 저녁을 대신하고 일찍 자리에 들었다. 첫날인 10월 8일, 아들애는 시화호를 찾아보자고 했지만, 나는 이왕이면 대부도까지 가보자고 제안했다. 나는 애당초 제부도(濟扶島)를 염두에 두었었다. 언제던가, 어떤 여성 작가가 쓴 단편소설 ‘제부도’가 떠올라서였다. 그러나 경기도 화성의 제부도는 대부도보다 조금 더 멀었고, 훨씬 작은 섬이었다. 간척호수 시화호방조제길 화성시 남양반도에서 바라보면 큰 언덕처.. 2022. 10. 21.
[시골 사람 서울 나들이 ②]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모네와 피카소를 만나다 (국립미술관 과천관) 관람기 서울이 “모든 욕망의 집결지”(김승옥 단편소설 ‘서울, 1964년 겨울’)라 함은 서울이 그 욕망의 해소가 가능한 공간과 시설을 품은 도시이기 때문이다. 탐욕과 향락으로 이어지는 저열한 욕망 따위는 내버려 두자. 시민들은 일상의 권역 안에 자리 잡은 박물관, 미술관, 극장, 음악관, 그리고 각종 기념관 등에서 손쉽게 문화·예술·여가를 즐길 수 있다. ‘도민’이나, ‘군민’, 또는 소도시의 ‘유사(?) 시민’으로 불리는 지방 사람들은 도시에 그런 편익 시설이 있다는 걸 쉽게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미술관과 국립극장… 시골 사람의 서울 문화생활 맛보기 서울에 드나들면서 아들애의 집에 묵을 수 있게 되자 나는 먼저 종묘와 창덕궁 등 가 보지 못한 고궁을 둘러보았었다. 올해 .. 2022. 10. 19.
[시골 사람 서울 나들이 ①] 난생처음 국립극장에 옛 연극을 보러 가다 처음 만난 국립극장과 연극 (2022.8.10.) 난생처음 국립극장에 가다 지난 8월 10일 오후 3시, 나는 난생처음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의 2층 B구역 4열 7번 객석에 앉아 있었다. 그날 오전 9시 반에 나는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진료받았고, 휴가를 내어 찾아온 아들애와 만나 대학로 부근에서 점심을 먹은 다음 국립극장을 찾았다. 언젠가 박정자 배우의 연극을 보겠다고 마음먹은 지는 꽤 오래됐지만, 나는 그걸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었다. 8월 4일에 어느 일간지에서 전무송, 박정자 등의 원로 배우들이 조연과 앙상블(주연과 조연 등을 제외한 여러 단역을 모두 소화하는 배우)로 참여하여 6년 만에 새로 올린 연극 관련 기사를 읽고 나는 단박에 인터넷으로 표를 샀다. 다행히 공연은 내 병원 예약일에도 이어.. 2022. 10. 6.
상주 노악산 남장사, 8점의 ‘보물’을 품었다 [상주 문화재 순례] ③ 노악산(露嶽山) 남장사(南長寺) - 상주시 남장동 *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그리 멀지 않은 곳인데도 거기에 가 봤던지 어떤지가 아리송한 곳이 더러 있다. 그곳은 대체로 소싯적의 기억이 가물가물한 장소거나 철든 뒤에 들렀어도 무심히 스쳐 간 곳 등이다. 노악산(露嶽山) 남장사가 그런 곳인데, 상주는 내 소싯적과 무관한 지역이니 아마 성년의 어느 때 무심히 들른 곳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잃어버린 기억 속의 남장사를 다시 찾다 아마 1990년대 초반 해직 시기에 상주에 머물때에 동료들과 거기 들렀지 않나 생각한다. 그런데도 거짓말처럼 기억이 비어 있는 것은 그때만 해도 명승고적을 무심히 지나치던 시기였고, 절집에서 마음에 남.. 2022. 9. 16.
우복 정경세의 청빈, 초가 별서(別墅) ‘계정(溪亭)’으로 남았다 [상주 문화재 순례] ② 국가민속문화재 우복 정경세 종가(상주 외서면 우산리) *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상오리에서 곧장 외서면 우산리 우복(愚伏) 정경세(鄭經世, 1563~1633) 종가로 차를 몰았다. 나는 정작 우복이 상주 사람인 것도 몰랐지만, 동행한 안 시인이 거기가 지인의 본가라면서 들러 보자고 해서였다. 상주에서 18년째 산다는 운전자 역사과 정 선생도 지역에 밝아서 망설이지 않고 내처 차를 달렸다. 단지 조선조의 문신이라는 정도로만 알고 있는 우복 정경세는 상주시 청리면 율리에서 태어나, 외서면 우산리에 살다가 사벌면 매호리에서 세상을 떠나 공검면 부곡리에 묻혔다. 과 몇몇 매체에 실린 우복의 생애를 가려 뽑아 아래와 같이 정리했다.. 2022. 8. 28.
속리산 자락의 폐사지, 칠층석탑이 외롭다 [상주 문화재 순례] ① 보물 상주시 화북면 ‘상오리 칠층석탑’ *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지난 13일 오전, 일행과 함께 상주시 화북면 상오리 699번지 상오리 칠층석탑을 찾았다. 그 전날, 상주에서 옛 동료들과 만났었고, 하룻밤을 동료의 작업실에서 묵은 뒤, 다시 만난 일행 두 사람과 함께 상주 관내 문화재를 찾아 나선 길이었다. 상주의 석탑 두 기 시외버스로 상주로 가면서 나는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을 검색하여 상주의 문화재를 대충 훑어보았다. 하룻밤을 묵고 난 다음 날에 짬을 내서 그걸 돌아보는 것도 괜찮을 듯해서였다. 상주에는 국가지정문화재 중 국보는 없고, 보물이 20점이나 있었는데 그중 불탑이 두 기였다. 하나는 사벌국면(나는 ‘사벌면’.. 2022. 8. 26.
강화고인돌, 삼천 년 전 청동기시대 사람들의 무덤들 [강화도 여행 ③] 인천광역시 강화군 하점면 부근리 강화고인돌(2022.5.5.) *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강화도 여행의 마지막 여정으로 강화고인돌을 선택한 것은 남은 시간과 거리, 소요 시간 따위를 고려해서였다. 고려 궁지를 나설 때쯤 이미 해가 한 뼘은 기울어졌고, 돌아가는 시간과 관광객들이 강화를 빠져나가는 시간 등을 잰 끝에 고른 여정이었다. 우리가 찾은 곳은 사적 137호 강화군 하점면 부근리의 고인돌이다. 이 고인돌은 하점면 일대 40여 기의 고인돌과 한반도를 비롯한 동아시아에 분포하는 고인돌을 대표하는 고인돌로 알려진 지석묘다. 주차하고 차에서 내리자, 낮은 구릉 저편, 풀밭 속에 서 있는 거대한 고인돌이 멀리서도 한눈에 들어왔다... 2022. 8. 10.
몽골에 쫓겨 천도했지만, 고려 귀족들의 사치는 이어졌다 [강화도 여행 ②]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고려 궁지(2022.5.5.) *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성공회 강화읍 성당을 둘러보고 나와 사적 강화 고려 궁지(江華 高麗宮址)로 향했다. 고려 궁지는 성당 근처인 강화읍 관청리(북문길 42)에 있었다. 고려의 강화도 천도는 교과서를 통해 배웠지만, 그게 현실 유적으로 남아 있다는 사실은 낯선 느낌이다. 신라는 경주에, 조선은 서울에 그 흔적을 남기고 있지만, 고려의 수도 개경은 휴전선 너머에 있기 때문이다. 무신집권기 몽골의 침략 대비 강화도 천도(1232) 강화 고려 궁지는 고려가 몽골군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해 고종 19년(1232)에 강화도로 수도를 옮기고 1234년에 세운 궁궐과 관아 건물이다.. 2022. 8. 8.
되돌아보는 2019년 가을 ‘단풍’ [지리산자락 지각 답사기] ⑤ 이르다고 발길 돌린 피아골 단풍 *PC에서는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2019년 10월 31일에 찾은 피아골 피아골은 2019년 10월 31일, 여행 첫날의 첫 방문지였다. 우리는 연곡사를 거쳐 직전마을에 이르는 길을 오르면서 길옆 계곡의 단풍을 돌아보았다. 그러나 ‘화염’으로까지 비유되는 지리산 단풍을 상상하면서 잔뜩 기대하고 온 나에게 이제 막 단풍으로 물드는 계곡의 가을은 좀 마뜩잖았다. 상기도 푸른빛을 마저 벗지 못한 나무들 가운데 드문드문 눈에 띄는 단풍나무들이 연출하는 붉은 점경(點景)을 투덜대면서 나는 아내에게, 때를 맞추지 못했다고, 다음에 오자며 발길을 돌려버렸다. 정작 뒷날의 기약이란 흔히 공수표가 되고 만.. 2022. 8.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