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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안동 이야기66

금계국(金鷄菊) 꽃밭에서 안동 낙동강변의 금계국 꽃밭 “안동엔 꽃이 많다.”라는 진술은 뜬금없을까. 지방자치제가 뿌리를 내리면서 모든 지방 자치단체가 시가지와 관내 일원을 아름답게 단장하는 것은 일반적인 현상이니 말이다. 요즘 어디를 가도 연도는 꽃길이다. 철 따라 달라지는 꽃길을 가꾸는 것은 그 목적이 어디에 있든 좋은 일이다. 안동의 4월은 벚꽃으로 하얗게 빛나고, 5·6월은 금계국의 노란빛으로 부시다. 안동시는 꽃과 숲이 어우러진 ‘생태환경 도시’ 조성을 위해 2006년부터 금계국을 심기 시작해 첫해인 2006년에 97㎞, 지난해 100㎞, 올해 100㎞의 금계국 꽃길을 만들었다. 지난 5월 말부터 온 시가지와 도로가 금계국 노란 꽃으로 뒤덮여 있다. 짙은 녹색의 줄기 때문에 더 화사하게 두드러지는 노란 꽃의 행렬은 길마다.. 2021. 6. 13.
[사진] 봄 아닌 봄, 벚꽃 행렬 봄 같지 않은 봄의 벚꽃 행렬 오늘을 투표일이 아니라 흔치 않은 임시 공휴일로만 이해한 이들이 훨씬 많았나 보다. 11시쯤 가족들과 함께 인근 투표소로 가 투표를 했다. 노인대학 로비에 마련된 투표소는 한산했다. 선관위에서 예측하듯 투표율은 시원찮은 모양이다. 허리가 잔뜩 굽은 안노인 한 분이 힘겹게 투표소를 나서는 걸 보고, 딸애가 그랬다. “할매, 집에서 쉬시지 않고선…….” 아내가 초를 쳤다. “말조심해라. 그러다가 경친 일도 있지 않아?” 지난 2004년 총선 때의 촌극을 떠올리면서 우리는 멋쩍게 웃었다. 노인이 던진 표의 무게가 내 그것과 다르지 않을 터이지만, 노인의 위태한 행보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기분은 씁쓸하다. 오늘 아침 의 머리기사는 “총선 ‘계급 배반’의 오류 범하지 맙시다”였다. 노.. 2021. 4. 9.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산동네의 봄 안동 태화동 산동네에 닿은 봄 안동시 태화동 ‘말구리길’은 안동에서 가장 먼저 봄이 오는 곳이다. 물론 그것은 전적으로 내 생각일 뿐이다. 몇 해 전, 말구리재에 이어진 야산을 거닐다가 그해 처음으로 생강나무꽃과 매화를 만난 곳이 말구리길이기 때문이다. 말구리길은 태화동에서 송현동으로 넘어가는 고개인 ‘말구리재’ 이쪽의 야산 아랫동네를 일컫는다. 말구리길은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는 지번 위주의 주소체계를 도로이름과 건물번호를 부여하여 관리하는 새로운 주소체계를 따라 붙인 이름이다. ‘말구리’라는 지명은 전국 곳곳에 흩어져 있는데 다른 데는 어떤지 모르지만 태화동 말구리는 ‘말이 굴렀다’는 뜻을 담고 있다. ‘말’에 ‘구르다’는 동사의 어간(‘구르-’)에 명사를 만들어주는 접사 ‘-이’가 붙어서 이루어진 말.. 2021. 4. 5.
“너희 집도?” “6천 마리 죽였어요” [르포] 구제역 휩쓴 안동·예천 지역…주민들은 울상, 지역경제 꽁꽁 ‘54년 만의 혹한’이라는 성탄절. 많은 가정과 교회에서 ‘구주 오신 날’을 기리고 있을 때, 경상북도 안동 지역에서는 구제역 예방 백신 접종이 시작되었다. 지난 11월 29일 안동시 와룡면 서현 양돈 단지에서 최초의 구제역 양성반응 판정이 있은 지 꼭 27일 만이다. 지역을 얼어붙게 한 것은 수십 년 만의 추위만이 아니다. 양돈 단지에서 발생한 구제역은 일주일 만에 무려 30곳으로 번졌고, 예천·영양·영주·봉화 등 경북 일곱 개 시군으로 확산하였다. 12월 25일 현재 안동에서는 한우 3만2000여 마리, 돼지 9만4000여 마리 등 총 12만9000여 마리가 살처분됐다. 이는 전체 가축 16만6000여 마리 가운데 83%에 해당하는 .. 2020. 12. 28.
안동 소산리와 청음 김상헌 척화대신 청음 김상헌의 안동시 풍산읍 소산리 안동 인근의 마을과 고택, 그리고 곳곳에 자리한 정자와 절집을 더듬고 거기 관한 글을 써 온 지 두어 해쯤 되었다. 블로그를 처음 시작하면서였다. 그러다 우연히 그 글을 다듬고 기워 에 보내고 기사로 실리면서 예의 글쓰기는 힘을 받았나 보다. 제대로 공을 들이고 내용을 채운 글은 기사로, 그보다 가볍고 부담 없이 쓴 글은 블로그에 올리곤 했다. 글을 쓰기 위해서 다닌 길은 물론 아니다. 나는 내가 사는 땅의 내력이나 뜻을 이해하는 일은 이 땅의 한 귀퉁이에 깃들여 사는 사람으로서의 예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양반’은 화석이 된 전근대의 신분적 표지일 뿐 그런데 이 땅이 이른바 ‘양반의 고장’, 그것도 꼬장꼬장한 ‘안동 양반’의 땅이다. 어지간히 허술하다 싶은.. 2020. 8. 8.
하회·양동마을, 열 번째 ‘세계유산’이 되다 하회마을과 양동마을이 ‘한국의 역사 마을’로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안동과 경주의 전통 마을인 하회마을과 양동마을이 ‘한국의 역사 마을’로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기사 바로 가기) 이는 1995년 석굴암·불국사, 해인사 장경판전, 종묘가 처음으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이래 세계유산으로는 열 번째, 문화유산으로는 아홉 번째다. 이번 세계유산 지정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WHC)가 지난 7월 31일(현지 시각) 브라질리아에서 열린 제34차 회의에서 한국이 신청한 ‘한국의 역사 마을 : 하회와 양동(Historic Villages of Korea : Hahoe and Yangdong)’에 대한 세계문화유산(World Cultural Heritage) 등재를 확정함으로써 이루어졌다. 유.. 2020. 8. 2.
나무는 살아남았고, 사람들은 과거를 잃었다 안동시 길안면 ‘용계리 은행나무’ 기행 100년, 한 세기를 넘으면 사람이나 사물은 ‘역사’로 기려진다. 백 년이란 시간은 단순히 물리적 시간의 누적에 그치지 않고 그 나이테 속에 한 나라, 한 사회의 부침과 희비와 온갖 곡절을 아로새기기 때문이다. 거기엔 물론 아직도 인간의 평균 수명이 100년을 넘지 못하는 까닭도 있을 터이다. 굳이 아흔아홉을 ‘백수(白壽)’라 부르는 까닭도 그 백 년이 쉬 다다를 수 없는 시간이라는 반증이다. 그러나 백 년을 넘기더라도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시간은 한정되어 있다. ‘존재의 한계’라는 표현은 그런 인간의 유한성에 대한 압축적 표현이다. 백 년을 훌쩍 넘기는 사물로 눈을 돌려본다. 백 년을 넘겨 장수하는 사물 가운데 고건축을 제외하면 생명을 가진 것으로는 나무를 꼽을 .. 2020. 7. 27.
선돌, 구실 잃은 옛 ‘바위’들은 외롭다 안동 와룡면의 ‘자웅석’과 ‘선돌’ 을 찾아서 안동에 십 년 넘게 살아왔지만, 아직 안동에 대해선 모르는 게 더 많다. 이 경북 북부의 소도시가 드러내는 오늘의 모습을 살피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러나 서울의 2배가 넘는 땅덩이 곳곳에 숨은 이 땅의 속살을 들여다보는 일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은 일이다. 안동이 2006년부터 써 온 도시 브랜드 슬로건은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다. 글쎄, 안동에 사는 사람들에게 이 구호는 다소 민망한 구호일 수도 있겠지만, 정작 외부인들에게는 좀 다르게 다가가는 모양이다.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는 국가 브랜드 선정위원회가 전국 기초·광역단체 246곳의 브랜드를 평가한 ‘2010 국가 브랜드 대상’에서 전통문화 브랜드 부문에서 대상을 차지했다니 말이다. 안동은 ‘한.. 2020. 7. 4.
아이 업은 저 여인, 어딜 가는고 안동 서지리 ‘서낭당’과 ‘선돌’을 찾아서 소싯적 일이다. 이웃 마을에서 산 너머 동네로 넘어가는 산길이 있었다. 버스를 타고 신작로로 가면 금방이었지만 자동차도 드물고 어지간한 거리라도 걸어 다니던 시절이었다. 밋밋한 오르막 위 산등성이에 일부러 만든 듯한 묘한 돌무더기가 하나 있었다. 사람마다 거기다 돌멩이 하나씩을 던져 넣고 지나갔다. 그 마을 아이들은 그게 ‘아기 무덤’이라고도 했고, ‘귀신 무덤’이라고도 했던 것 같다. 거기다 돌 하나라도 던져넣고 가지 않으면 무슨 해코지를 당할지도 모른다고 아이들은 우리를 은근히 을러대곤 했다. 지금은 아마 그 길은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근대화의 물결이 들이닥치면서 시골에 남아 있었던 공동체의 흔적 따위는 거짓말처럼 지워졌으니까. 그 미스터리의 돌무더기가 .. 2020. 6. 11.
[사진] 천등산(天燈山)의 봄 봉정사 깃들인 천등산의 봄 지난 4월의 마지막 날에 천등산에 올랐다. 거의 이태만이다. 5월로 가는 계절은 소담스러운 철쭉꽃의 행렬과 신록의 물결 속에서 의연하게 사람들을 맞고 있었다. 산은 늘 거기 있는 그대로다. 거기 드는 사람의 마음이 희로애락의 곡절 속에 헤맬 뿐. 그냥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이 봄은 그득하다. 2008. 5. 3. 낮달 2020. 5. 3.
경상도 봉화에서 ‘이몽룡’의 집을 찾다 봉화군 물야면 가평리 성이성이 이몽룡의 모델이었다 청암정과 석천정사를 돌아 아내와 나는 잠깐 망설이다 물야면 쪽으로 행선지를 잡았다. 시간은 넉넉했고, 춘양 쪽의 정자보다 물야면의 계서당을 찾는 게 수월하리라는 생각에서였다. 봉화는 자그마한 산촌이다. 그만그만한 마을이 느긋하게 어깨를 겹치고 있는 이 한촌에 뜻밖에 고택·정자가 많다. 봉화군에 들어서면 “의 실존 인물 이몽룡 생가”라는 이정표가 군데군데 걸려 있다. 이몽룡이라면 잘 알려진 고전소설의 주인공, 남원 부사의 아들인데 엉뚱하게 ‘봉화에 생가’ 운운하는 것은 뜬금없다. 그러나 눈 밝은 이들은 1999년, 호사가의 입방아에 오르내린 ‘이몽룡은 실존 인물’이라는 보도를 기억한다. ‘이몽룡’ 모델은 봉화의 ‘성이성’이었다 연세대의 설성경 교수가 ‘이몽.. 2020. 3. 21.
개목사(開目寺)에서 ‘적요’에 눈 뜨다 [여행] 안동 천등산 개목사의 ‘발견’ ‘발견’은 ‘이제까지 찾아내지 못했거나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것을 처음 찾아냄’을 뜻한다. 그러나 그 낱말의 속내는 반드시 단순명쾌하지만은 않다. 역사는 아메리카 대륙이 1492년에 콜럼버스에 의해 ‘발견’되었다고 기술하지만, 그것은 2만5천 년 동안 거기서 살아온 원주민들을 투명 인간으로 간주하는 불공정한 정치적 기술이기 때문이다. 무명의 대중인 내가 천년도 전에 문을 연 고찰을 ‘발견’했다고 말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것은 예가 아니라 일종의 능멸이 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늘 거기 있었던 오래된 산사가 어느 날, 마치 무슨 계시처럼 마음에 닿아온 것을 ‘발견’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것을 어찌하랴. 산사가 마음에 다가왔다 개목사(開目寺)는 경북 안동 봉정사 .. 2020. 2.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