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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순국(殉國)29

[순국] 하산 양기하, 만주 관전현에서 전사 1932년 2월 10일, 조선혁명당 정치 부위원장 하산 양기하 선생 순국 1932년 2월 10일, 랴오닝성 관전현(寬甸縣)에 주둔하고 있던 조선혁명당 소속 독립군은 일본 경찰대와 만주국 군대의 기습 공격을 받았다. 이에 조선혁명당 정치 부위원장 하산(荷山) 양기하(梁基瑕, 1878~1932)는 격전 끝에 수십 명의 조선혁명군 병사들과 함께 전사 순국하였다. 그는 조선혁명군 총사령관 양세봉(1896~1934), 중앙집행위원장 대리 고이허(1902~1937)와 함께 남만주에서의 마지막 무장 항일투쟁의 역사를 장식한 지도자였다. 그가 순국한 뒤 양세봉은 이태 후 밀정의 사주로 중국인 자객에게 살해되었고 일본군과 교전 끝에 포로가 된 고이허는 1937년 총살되었다. 양기하는 충남 논산 사람이다. 아호는 하산(荷.. 2023. 2. 10.
[순국] 간도 국민회군 사령관 안무 장군 전사 1924년 9월 7일, 대한국민회군 사령관 안무 장군 순국 1924년 9월 7일, 대한국민회군 사령관 안무(安武,1883~1924) 장군이 용정(龍井) 자혜 병원에서 숨을 거두었다. 일본 경찰과 교전하다가 중상을 입고 병원에 이송된 그는 일제의 치료를 거부하고 죽었다. 향년 41세. 자유시 참변(1921) 이후 북간도 일대에서 활동하던 그는 전날, 일경의 습격을 받아 모아산 부근에서 교전하다가 복부에 총상을 입고 체포되었었다. [관련 글 : 1921년 오늘-대한독립군단 총재 서일, 자결 순국하다] 일제의 치료 거부하고 순국 안무는 함경북도 경성 사람이다. 호는 청전(靑田), 본명은 안병호다. 1900년 대한제국 육군 진위대(鎭衛隊)에 입대하여 해산(1907)될 때까지 교련관으로 일하였다. 이후 경성의 함.. 2022. 9. 5.
[순국] 곡기 끊어 순국한 독립운동가와 ‘민족가수’ 백년설 순국 111주기 자하 장기석(1860~1911) 선생을 기리며 1월 5일은 자하(紫下) 장기석(張基奭, 1860~1911) 선생의 순국 111주기였다. 1세기하고도 10년이 더 지났으니 역사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멀어졌던가. 나는 자료를 뒤져 그의 삶을 돌이켜보다가 그 주말에 성주 벽진의 집실 마을을 다녀왔다. 감옥에서 27일간 곡기 끊어 순국 선생을 알게 된 것은 2년 전, 순국 102주기를 맞은 칠곡의 독립운동가 만송 유병헌(1842~1918) 선생을 기리는 기사를 쓸 무렵이다(관련 기사 : “일왕 머리를 베었어야” 법정서 일갈한 선비의 사연). 경술국치 이후에 자정(自靖) 순국한 분 가운데서 이웃 고을 성주 출신인 선생의 함자를 발견하면서였다. 자하 장기석은 국권을 잃은 이듬해인 1911년 1월 5일.. 2022. 1. 23.
[순국] 선비는 ‘일왕의 두개골로 술잔을 만들지 못함을 한’했다 순국 102주기, 만송 유병헌(劉秉憲, 1842~1918)을 기리며 8월 26일은 경북 칠곡의 선비 유병헌(劉秉憲, 1842~1918)의 순국 102주기다. 1918년 이날, 그는 보안법과 주세령 위반으로 복역하던 대구 감옥에서 8일간의 단식 끝에 자신의 목숨을 거두었다. 향년 77세. 을사늑약이 체결되었을 때 오적(五賊)을 성토하면서 시작된 그의 항일 투쟁은 일제 치하의 납세뿐 아니라, 토지조사 사업까지 거부하기에 이르렀고 세 차례의 투옥 끝에 마침내 옥중 순국한 것이다. 유병헌은 1842년 경상도 인동도호부(현 경상북도 칠곡군 북삼읍 숭오리 강진마을)에서 유익원의 맏이로 태어났다. 본관은 강릉, 호는 만송(晩松). 그는 진주 민란(1862)과 제너럴셔먼호 사건·신미양요(1871), 운요호사건(1875.. 2020. 8. 24.
[순국] 대한광복회 총사령 박상진, 대구형무소에서 순국 1921년 8월 11일, 고헌 박상진, 대구형무소에서 처형되어 순국 1921년 8월 11일, 대구형무소에서는 대한광복회 총사령 박상진(朴尙鎭, 1884~1921)이 교수형으로 순국했다. 일찍이 경성감옥에서 순국한 왕산 허위(1855~1908, 1962 대한민국장)의 시신을 수습하여 금오산 아래에 모시고 1년의 시묘(侍墓)로 스승을 배웅한 제자, 반민족적 친일부호들을 처단하는 의열투쟁을 전개한 청년 독립운동가는 서른일곱에 뜨겁던 삶을 마감했다. 박상진은 울산 출신이다. 호는 고헌(固軒). 고향에서 한학을 공부하다가 열아홉 살(1902) 때 의병장 출신으로 서울 평리원 판사로 있던 왕산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904년 양정의숙 전문부에서 법률과 경제학을 공부하고 1910년 판사시험에 합격하여 평양법원에 발.. 2019. 8.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