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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삶 ·세월 ·노래 32

아프지 않은 사랑은 없다 -차중락의 ‘사랑의 종말’ 차중락이 부른 대중가요 ‘사랑의 종말’ 가수 차중락(1941~1968)은 내겐 실재감이 없는 존재다. 더 까마득한 시대의 인물인 김정구나 현인 같은 이와는 달리 나는 살아 있는 그의 모습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몇 곡의 노래와 풍문으로 내게 다가온 사람이었다. 노래와 풍문으로 다가온 사람, 차중락 그가 죽었을 때 나는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물론 나는 그의 죽음을 훨씬 뒤에야 알았다. 나는 중학교 시절에야 형이 부르는 몇 편의 노래를 통하여 그와 그의 노래를 만났다. 형이 애절하게 불렀던 그의 노래들―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 사랑의 종말, 철없는 아내―을 나는 꽤 예민하게 받아들였던 것 같다. 나는 이내 그 노래를 배웠고 내 방식으로 노래가 전하는 사연에 몰입할 수 있었다. 사랑과 이별을 이해하.. 2020. 7. 29.
‘항구와 마도로스’, 기억 속의 노래들 1960년대의 대중가요와 유년 시절 생전 처음으로 유행가라고 듣고 배운 게 이미자가 부른 ‘섬마을 선생님’이었다는 얘기는 일찌감치 한 바 있다. (☞ 바로 가기) 나는 그걸 삐삐선으로 공급되는 이른바 ‘유선 앰프 라디오’의 연속극을 통해서 배웠다. 애절한 이미자의 노래가 환기해 주는 남도의 정서 앞에 나는 오줌을 지릴 것 같은 조바심을 느끼곤 했다. 초등학교 5학년이 되면서 남녀 혼성반이었던 학급이 남녀로 갈렸다. 새로 구성된 학급은 낯설었다. 인근 마을 아이들로 구성되었던 4학년 때까지의 학급과 달리 그보다 훨씬 먼 마을의, 키도 크고 인상도 다분히 고약한 사내아이들이 한 반이 된 것이다. 벌어진 잇새로 침을 갈기거나 거친 욕설을 예사롭게 쓰는 이 새 동무들 앞에서 나는 좀 긴장했던 것 같다. 낯선 5.. 2020. 1. 16.
새해에 듣는 노래, ‘갈 수 없는 나라’ 조해일의 노랫말, 해바라기의 노래 ‘갈 수 없는 나라’ 2011년 새해 첫날, 1면에 실린 사진에 오래 눈길이 머물렀다. 연평도에서 태어나서 평생을 살아온 한 할머니가 천주교 연평도 성당에서 주름진 두 손으로 드리는 기도의 사진이다. 그 기도는 물론 평화와 안전을 비는 것이었을 것이다. 35면 사설은 “평화, 우리 모두의 가슴에 꽃피워야 한다”였다. 소제목까지 붙인 이 사설에는 가 일관되게 추구하는 한반도의 평화와 공존에 대한 염원이 오롯이 실려 있었다. 천천히 사설을 읽어 가는데 1면의 할머니가 주름진 손으로 올리는 기도의 장면이 아주 자연스럽게 겹쳐지는 듯했다. 사설은 지난해 연평도에서의 군사적 충돌 이후 계속되는 대치와 위기상황을 지적하면서 시방 한반도에 필요한 것은 남북 간 평화와 화해라고 힘주어.. 2020. 1. 12.
그 강 건너 불빛 - 은방울 자매의 ‘마포종점’ 1960년대 여성 듀엣 은방울 자매의 히트곡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한 공중파의 대중가요 프로그램을 시청할 때가 있다. 주로 흘러간 옛 노래를 다루는 이 프로그램은 시대별·주제별로 옛 노래를 들려준다. 저 시기에, 저런 주제의 유행가가 저렇게 많았던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아는 노래가 나오면 공연히 그 노래가 떠올려주는 옛날을 추억하지 않을 수 없다. 노래에 담긴 ‘세월’, ‘시간의 자취’들 유행가에 무슨 심오한 철학이, 삶과 사랑에 대한 대단한 성찰이 담겼을 리는 없다. 그것은 가장 대중적인 언어로 가장 대중적인 주제의 삶과 사랑을 가장 대중적인 방식으로 노래할 뿐이다. 그런데도 유행가가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것은 그 노래에 담긴 세월과 시간의 자취 때문이다. 사람들은 대중가요를 단순히 리듬과 멜로디로서가.. 2020. 1. 4.
‘가설 천막극장’에서 만난 영화와 노래들 유년 시절, 가설 천막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유행가를 배우다 영화진흥위원회의 통계에 따르면 2014년 현재 전국의 극장은 모두 333개, 스크린은 2,184개다. 대부분 복합상영관(멀티플렉스)일 터이니 가히 ‘영화의 전성시대’라 불러도 지나치지 않겠다. 영화를 보려면 그걸 상영하고 있는 영화관을 찾아다녀야 했던 단관 중심의 과거 극장가는 그야말로 옛이야기가 되었다. 멀티플렉스 시대에 떠올리는 ‘가설극장’ 그러나 여전히 영화관이 없는 시군이 적잖다. 군청 소재지가 있는 소읍에 있던 영화관은 대부분 문을 닫은 지 오래여서 시골 사람들은 영화 한 편을 보기 위해서는 영화관이 있는 대도시로 원정을 가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문화 소외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서 경상남도에선 ‘작은 영화관’ 건립을 추진한다고 한다. .. 2019. 11. 19.
나팔꽃과 동요 ‘꽃밭에서’ 나팔꽃의 계절과 동요 ‘꽃밭에서’ 바야흐로 ‘나팔꽃의 계절’이다. 주변에서 나팔꽃을 일상으로 만나게 된 건 요 몇 해 사이다. 걸어서 출근하다 보면 두 군데쯤에서 새치름하게 피어 있는 나팔꽃을 만난다. 한 군데는 찻길에 바투 붙은 커다란 바위 언덕이고 다른 한 군데는 주택가의 축대 위다. 굳이 ‘새치름하다’고 쓴 까닭은 굳이 설명할 일은 없을 듯하다. 때를 맞춰 활짝 무리 지어 피어난 꽃은 ‘흐드러지다’고 표현하지만 이른 아침, 산뜻한 햇살을 받으며 꽃송이를 여는 나팔꽃을 ‘흐드러지다’고 묘사하는 것은 아이들 말마따나 ‘에러’기 때문이다. 나팔꽃은 말 그대로 꽃잎에 나팔 모양으로 생겼다. 짙은 남색이나 연보라, 연파랑 등의 산뜻한 색상으로 피어나는 나팔꽃은 수더분하거나 넉넉함과는 거리가 멀다. 뭐라 할까.. 2019. 9. 23.
‘은유’가 사라진 시대에 듣는 ‘은유’의 노래들 이제 대중가요엔 ‘은유’도 사라지고 ‘직설’만 남았다 나는 웬만한 프로그램이 아닌 한 심야에 텔레비전을 잘 보지 않는다. 프로그램에 흥미를 잃은 탓도 있지만 ‘시작은 하되 끝을 보지 못하는’ 시청 습관이 더 큰 이유다. 언제부턴가 초저녁잠을 이기지 못하고 누워 있다 저도 몰래 잠이 든다는 걸 알게 되면서부터다. 그래서 끝을 볼 자신이 없으면 아예 텔레비전을 꺼버리곤 하는 것이다. 쟁점을 다루는 심야 토론 프로그램도 초반부나 챙겨보는 게 고작이다. 어젯밤 11시쯤에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콘서트 7080’을 맞닥뜨렸다. 귀에 익은 노래라면 한두 곡쯤은 들어주긴 하지만 요즘, 이 프로그램에 나오는 노래도 내게는 낯설 경우가 많다. 그래서 대개 잠깐 눈길을 주다가 채널을 돌리거나 전원을 꺼버리곤 한다. 그러나.. 2019. 9. 13.
박인희, 혹은 사이먼과 가펑클의 ‘스카버러’ 박인희가 번안해 부른 사이먼과 가펑클의 ‘스카버러의 시장(Scarborough Fair)’(1966) 번안곡의 제목이나 노랫말은 원곡과 꽤 동떨어진 경우가 있는 듯하다. 기본적으로 정서가 다르고 사물에 대한 표현이나 서사가 다르니 그럴 수밖에 없을지 모른다. 그러다 보니 번안곡으로 알게 된 노래는 원곡의 내용이나 표현과 무관한 것일 때도 적지 않다. 70년대를 전후하여 꽤 높은 인기를 누렸던 트윈폴리오의 노래 ‘웨딩 케이크(Wedding Cake)’나 조영남이 번안해 부른 노래 ‘프라우드 메리(Proud Mary)’ 같은 노래가 그 좋은 예다. 코니 프랜시스가 부른 원곡 ‘웨딩 케이크’에는 ‘사랑의 상실’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10년차 주부가 ‘결혼과 결혼 후의 삶’을 담담히 고백하고 있을 뿐이.. 2019. 9. 12.
‘달맞이꽃’, 그 꽃과 노래 그리고 세월 이용복의 ‘달맞이꽃’ 나는 꽃보다 먼저 노래로 ‘달맞이꽃’을 만났다. 시각장애인 가수 이용복(1952~ )이 부른 대중가요 ‘달맞이꽃’으로 말이다. ‘달맞이꽃’이 언제쯤 발표된 노래인지는 잘 모르겠다. 75년 무렵이었던 듯한데, 글쎄다. 인터넷을 검색해 봐도 관련 정보는 눈에 띄지 않는다. 인터넷 검색을 하면서 새삼 이용복이 특별히 대중의 사랑을 받은 가수였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검은 안경을 끼고 열정적으로 노래하던 그의 목소리의 결을 나는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뭐랄까, 미세한 진동이 느껴지는 고음의 떨리는 목소리는, 그러나 전혀 불안하지 않았다. 그 목소리는 노래 속에 아주 편안히 녹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 얼굴에 햇살을’과 ‘달맞이꽃’을 부르던 시절 그의 노래 가운데, 내가 즐겨 부른 노래도 .. 2019. 7. 12.
두 개의 ‘웨딩 케이크’, 그 삶과 사랑 트윈 폴리오의 번안곡 ‘웨딩 케이크’ 추석 연휴 때다. ‘트윈폴리오’ 멤버가 나온 한 예능 프로그램을 아주 흥미롭게 시청했다. 어느새 이순을 훌쩍 넘긴 저 70년대 통기타 가수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 내외는 묘한 감회에 젖었다. 그 시절, 그들이 부른 노래는 우리 세대가 누렸던 젊음과 자유의 일부였기 때문이다. 트윈폴리오, 70년대의 ‘젊음과 자유’ 70년대 초중반, KBS-TV에서 방영하던 ‘젊음의 행진’이란 프로그램이 있었다. 이 프로그램의 주역들이 바로 청바지에 기타를 메고 나와 이야기와 함께 포크송을 들려주던 트윈폴리오였다. 송창식과 윤형주, 그리고 그들이 부른 노래와 세월이 마치 빛바랜 무성영화처럼 떠오른다. 솔로로 활동할 때의 두 사람은 잘 알고 있지만, 웬일인지 ‘트윈폴리오’에 대한 기억.. 2019. 6. 11.
‘프라우드 메리(Proud Mary)’와 40년 세월 처음 만난 팝송 ‘프라우드 메리(Proud Mary)’와 소년 시절 원곡인 ‘프라우드 메리(Proud Mary)’를 먼저 알았는지 아니면 조영남이 부른 번안곡 ‘물레방아 인생’이 먼저였는지는 기억에 없다. 아마 비슷한 시기에 두 노래를 만났다고 하면 그리 틀리지 않을 듯하다. 원곡과 번안곡의 가사는 확연히 달랐지만 그게 별 대수겠는가. 1971년, 우리는 까까머리 중3이었다. 고등학교 입시가 코앞이었지만 뒤늦게 만난 친구들이 좋아서 날마다 내 자취방에 모여서 노는 데 미쳐 있을 때였다. 치기 만만했던 시절이었는데 그때 만난 친구 가운데 ‘진’이 있었다. 우리는 ‘문학’에 어정쩡하게 빠져 있었다는 점에서 코드가 같았다. ‘프라우드 메리’, 까까머리 시절의 노래 녀석은 시를, 나는 소설 쪽에 맘을 두고 있었.. 2019. 6. 8.
정태춘의 40년, 그는 ‘우리의 시대’였다 데뷔 40주년 맞은 정태춘·박은옥... 그와 함께한 우리의 젊은 날 정태춘(1954~)이 다시 소환되고 있다. 올해로 데뷔 40주년을 맞는 정태춘·박은옥은 공영방송 무대로 초청되고 각종 인터뷰 등으로 . ‘아이돌 못지 않은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고 한다. 정태춘·박은옥 40 프로젝트로, '붓글전’을 포함한 전시 가 베풀어졌고, 전국 순회 ‘날자, 오리배’ 공연도 곳곳에서 펼쳐졌다. 두 번째 시집 (천년의시작)도 출간되었다. 40주년, 정태춘의 소환 그러나 서울에서 벌어지는 부산한 움직임은 지방 소도시에 사는 이들에게 좀 먼 이야기다. 내가 정태춘을 다시 만난 것은 지난 4월 6일 1텔레비전에서 특별 편성해 방송한 ‘열린음악회’의 정태춘-박은옥 부부 편이었다. 나는 무심코 채널을 돌렸다가 거기 나온 정태춘.. 2019. 5.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