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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삶 ·세월 ·노래32

반세기 전 노래 정훈희의 ‘안개’, 영화 <헤어질 결심>에 영감을 주다 소설 ‘무진기행’을 영화화한 의 주제곡 정훈희의 ‘안개’ 기억이 명확지 않지만, 가수 정훈희가 부른 대중가요 ‘안개’를 처음 알게 된 건 중학교에 들어가서일 것이다. 부산 출신의 16살 소녀 정훈희가 ‘안개’로 데뷔한 1967년에 시골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내게 ‘대중문화’는 멀고 먼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중학에 들어가서 만난 노래 ‘안개’ 전기도 들어오지 않은 시골 출신 아이는 대도시의 중학교로 진학하면서 비로소 도시의 생활 양식을 익히게 되었다. 텔레비전은 대중화되기 전이고, 라디오는 있었지만, 나는 거리 곳곳에 성업 중이던 ‘소리사’(전축 등 음향기기를 주로 팔던 전파상) 가게 밖에 내놓은 대형 스피커로 연주되던 노래로 대중가요를 접할 수 있었다. ‘안개’는 그렇게 내가 즐겨 부르는 유행가 목록에 .. 2022. 12. 2.
동요 ‘꽃밭에서’, ‘과꽃’의 작곡가 권길상 선생 타계 동요 작곡가 권길상(1927~2015) 선생 별세 어젯밤, 텔레비전 뉴스에서 동요 ‘꽃밭에서’를 만든 동요 작곡가 권길상(1927~2015) 선생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러나 정작 고인에 대해 아는 게 없으니 그 부음은 뒷전이고 해맑은 아이들 목소리로 들려주는 ‘꽃밭에서’가 귀에 쟁쟁했다. 대중의 사랑을 받는 노래라도 그걸 만든 작사자나 작곡가까지 기려지는 경우는 드문 듯하다. 모두 아주 어린 시절에 무심히 배우게 되는 동요의 경우는 더더욱 그렇다. 그나마 가사를 쓴 이는 시인으로 기억되곤 하지만 작곡가가 누군지 궁금해하는 이는 잘 없는 것이다. 노래는 늙지 않아도 만든 이는 떠난다 권길상은 서울 출신으로 서울대학교 예술대학 음악부 1회 졸업생으로 서울에서 ‘봉선화 동요회’를 만들어 활동한 .. 2022. 3. 17.
‘졸업’, 낭만에서 현실로 ‘낭만’이 아닌 ‘고단한 현실’과의 대면 대학 졸업 시즌이다. 전국에서 50만여 명의 대학 졸업생이 그야말로 ‘쏟아져 나온다’. 그들 가운데 절반은 ‘백수’로 불리게 되는 미취업자라고 한다. 심각한 청년층 고용시장 상황 앞에 선 젊은이들의 표정은 어둡고 절박하다. 오죽하면 어떤 일간지는 ‘그들에게는 봄이 없다’라고까지 표현했을까. ‘취업난’과 ‘대출금 상환’으로 돌아온 졸업 입도선매(立稻先賣), 졸업하기도 전에 제각기 기업에 ‘팔려 가던’ 70년대 호시절에 비기면 오늘의 젊은이들은 불운하기 짝이 없다. 70년대 중반에는 사범대 졸업자들조차 기업으로 몰려가 시골 사학에서는 쓸 만한 교사를 모셔오는 게 ‘하늘의 별 따기’였다던가. 80년대 초반에 내가 대학을 졸업하던 때도 그리 상황은 좋지 않았다. 4학년 .. 2022. 2. 27.
‘눈물을 감추고’의 위키 리 별세 1960대 가수 위키 리(본명 이한필) 별세 어제저녁 텔레비전 뉴스를 통해 가수 위키 리(Wicky Lee: 본명 이한필)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한 시대를 풍미한 이후, 1992년 미국으로 건너가 ‘굿 이브닝 코리안’을 진행하는 등 로스앤젤레스 교포 방송에서 활동한 그는 현지에서 눈을 감았다. 1936년생이니 우리 나이로 여든이다. 그는 우리 세대와 친숙한 가수는 아니다. 우리는 단지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부터 몇 해 동안 그의 히트곡 ‘눈물을 감추고’를 즐겨 불렀을 뿐이니 그는 우리 앞 세대의 스타였다. 나는 80년대 초반에 스치듯 지나가며 보았던 KBS 1TV ‘전국노래자랑’의 초대 MC로 그를 기억하고 있다. 그의 노래를 즐겨 불렀지만, 전파매체가 대중화되기 이전이어서 나는 이름만 들었.. 2022. 2. 13.
통기타, ‘중년의 추억’도 흔들었다 통기타에 대한 추억을 환기한 옛 ‘세시봉’의 구성원들 기타, 21세기 청춘의 감성을 흔들다 ‘ESC’의 커버 스토리로 ‘통기타, 다시 청춘의 감성을 흔들다’가 실린 것은 지난주다. 지난해 신드롬을 일으켰던 ‘슈퍼스타 케이 2’에서 장재인, 김지수가 메고 있었던 통기타가 요즘 ‘21세기 청춘’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는 기사다. 낙원상가에서 초보자들이 쓰는 저가의 기타가 동이 날 지경이며 주요 문화소비층인 2, 30대 여성 기타 인구가 증가하고 있다는 소식도 곁들여져 있다. ‘통기타 치며 밤새 노래를 부르는 건 아저씨 문화’인데도 어느덧 통기타 배우는 이들에게 이는 ‘로망’이 되었다고 한다. 이런 현상이 대중문화에 가끔 나타나는 복고조인지, 아니면 다른 문화적 변화의 하나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전자음에 .. 2022. 2. 12.
“꽃잎처럼 향기로운 입술”, 정훈희의 ‘마음은 집시’ 70년대 칸초네 번안곡 ‘마음은 집시’ 어제 의성의 벗에게 다녀오는 길에 우연히 ‘마음은 집시’라는 옛 노래를 들었다. 70년대 초반, 고등학교 시절에 유행했던 노래였는데 뜻밖에 그것은 정훈희의 목소리였다. 나는 칸초네 번안곡인 그 노래를 이용복의 높고 가느다랗고 떨리는 목소리로 기억하고 있었다. 이용복의 부른 기억 속의 노래에 비기면 정훈희의 그것은 밋밋하고 단조로웠다. 그러나 무언가 갈증 비슷한 느낌이 있어서 나는 그 노래를 다시 한번 반복해 들었다. 그러다 보니 나는 운전하는 내내 그걸 되풀이해 듣고 있었다. 익숙한 가락인데도 매번 새롭게 들려오는 노랫말도 마음에 감겨왔다. 70년대 칸초네 번안곡 ‘마음은 집시’ 정훈희는 매우 매력적인 음색을 가진 가수다. 감미롭다고 할 만한, 가늘지만 높지는 않은.. 2021. 7. 31.
‘노래하는 사람’ 윤선애의 ‘시대와의 작별’을 지지함 윤선애 새 음반 에 부쳐 인터뷰를 읽고 주문한 윤선애의 새 음반 디브이디(DVD)를 택배로 받은 게 지난 화요일이다. 종이상자를 뜯고 뽁뽁이 봉투를 열자, 목 티셔츠를 입은 윤선애의 상반신이 찍힌 포장의 음반이 얌전히 담겨 있었다. 흑백 사진 속 단발머리의 윤선애는 미소를 띠고 정면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윤선애는 1964년생, 우리 나이로 쉰일곱이다. 1984년 9월, 서울대 중앙도서관 앞 광장의 임시 연단에서 ‘민주’를 부르며 민중가요 가수로 떠오른 스무 살 대학 새내기가 건너온 세월이 서른일곱 해다. 그때 “청아하면서도 처연한 목소리로, 민주주의에 목마른 청년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한겨레 인터뷰 기사, 아래 같음)던 그는 ‘민중가요계의 디바’로 불리면서 8, 90년대 민주화 투쟁 현장에서 활.. 2021. 5. 7.
봄비, 솔(soul) 가수 박인수의 인생유전 KBS 의 ‘봄비’와 가수 박인수의 삶 6, 70년대에 활약했던 가수들에 대한 기억은 늘 애매하다. 차중락이나 배호가 그랬고, 박건이나 김추자에 대한 기억도 그렇다. 짐작건대 텔레비전이 널리 보급되지 못했던 시대, 서민들이 가수와 그 얼굴을 동시에 기억하는 일은 쉽지 않았던 것 같다. 집에 전축을 두고 가수들의 엘피(LP)판을 사서 대중가요를 즐기던 이들은 그나마 나았다. 그러나 사람들은 대부분 겨우 라디오를 통해서만이 이들 대중문화에 접근할 수 있었다. ‘○○○ 리사이틀’이라는 이름으로 가수들 공연이 있긴 했지만, 그것 역시 서민에겐 멀기만 했다. 그 무렵 김추자의 도발적인 무대 매너가 화제가 되었지만, 그 역시 사람들은 ‘선데이 서울’과 같은 황색 주간지를 통해서 간접으로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연예.. 2021. 5. 5.
이장희- 노래여, 삶이여 음악에 대한 갈증을 확인하게 한 특집 방송 ‘세시봉’ 프랑스어로 ‘멋지다’는 뜻의 ‘세시봉(C’est Si Bon)이 시방 상종가다. 정확히 말하면 40여 년 전 ‘세시봉’이란 음악감상실에서 인연을 맺은 왕년의 가수들이 이야기하는 삶과 노래에 대한 대중의 갈채가 뜨겁다는 얘기다. 지난해 추석 연휴의 첫 방송에 이어서 어제 방영된 2회도 대단한 호응을 불러일으킨 듯하다. 텔레비전은 켜져 있으면 보고 꺼져 있으면 굳이 틀지 않는 편이다. 그러니 어떤 프로그램을 보려고 기다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나 어제는 일부러 기다렸다가 ‘세시봉’ 멤버들이 나오는 ‘놀러와’를 시청했다. 딸애는 물론, 명절을 쇠려고 내려온 아들도 함께였다. 추석 연휴 때도 우리는 ‘재방송’을 함께 시청했었다. [관련 글 : 통기타, ‘.. 2021. 2. 8.
애니멀스(The Animals)와 김상국의 ‘해 뜨는 집’ 애니멀스가 부른 ‘해 뜨는 집과 김상국의 번안곡 상처 입은 장미들이 모여 사는 거리 눈물에 젖은 가슴들이 웃음을 파는 거리 애니멀스(The Animals)가 부른 ‘해 뜨는 집(The House Of The Rising Sun)’을 처음 만난 것은 중학교 때였다. 고등학교에 다니던 형이 즐겨 불렀던 노랜데, 정작 나는 그 무렵에도 그 원곡을 들어본 적이 없다. 형이 흥얼거린 번안곡을 부른 국내 가수가 김상국이었다는 사실을 안 것도 얼마 전의 일이다. 집에 텔레비전은 아예 없었고, 라디오를 듣는 일도 쉽지 않았던 1960년대였다. 대도시로 유학 와 형과 누나 집을 전전하던 시골 소년이 대중문화를 접하는 일은 고작 그런 형식으로만 가능했던 때였다. 나는 형을 통해 ‘해 뜨는 집’의 리듬과 가사를 익혔다. 4.. 2020. 12. 26.
지금도 마로니에는 피고 있겠지 박건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1969) 초등학교 4학년 때, 이미자의 ‘섬마을 선생님’이 내가 태어나 처음 만난 대중가요였다. 그리고 그 노래가 주제가였던 라디오 드라마 ‘섬마을 선생님’은 내 일상에 충격으로 다가온 ‘서사(敍事)’의 세계였다. 말하자면 이미자의 노래는 내 유년 시절에 처음으로 열린, 낯선 세계로 열린 창이었던 셈이다. 초등학교를 졸업 후 막 ‘마포종점’이나 ‘소양강 처녀’ 따위로 유행가에 입문하면서 나는 고향을 떠났다. 나는 인근 대도시의 중학교 전기 입시에 실패하고 후기의 한 공립 중학교에 합격한 것이다. 나는 신암동 산동네의, 삼륜 화물차 한 대를 부리던 맏형 내외의 단칸방에 얹혀살게 되었다. 까까머리 시절에 만난 박건의 노래들 그때, 라디오를 통해 익힌 대중가요가 박건의 노래.. 2020. 10. 15.
왜 ‘미친 사랑(crazy love)’은 ‘서글픈 사랑’이 되었나 블루진의 ‘서글픈 사랑’이 된 폴 앵카의 ‘크레이지 러브’ 고등학교 신입생이던 1972년 겨울쯤으로 기억한다. 어느 날 동아리 친구 녀석이 ‘요즘 유행하는 노래’라며 노래 한 곡을 들려주었다. 단박에 느낌이 달랐다. 쥐어짜는 듯한 가수의 목소리가 떠난 사랑을 추억하는 노랫말과 맞춤하게 어울리는 노래였던 까닭이다. 그게 ‘서글픈 사랑’이다. 친구 녀석은 동무들 가운데 드물게 집에 하이파이(!) 오디오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고작 라디오를 통해서 인기 가요를 익히고 있었던 우리와 달리 녀석의 집에는 이른바 ‘엘피(LP)’판이라는 음반이 수북했다. 당연히 대중문화를 받아들이는 데는 녀석이 훨씬 빨랐음은 말할 것도 없다. 우리가 이내 그 노래를 배워 흥얼거리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무쇠라도.. 2020.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