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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미각과 삶, 혹은 추억22

콩나물밥, 한 시대와 세월 그 시절의 ‘콩나물밥’을 그리며 어저께 저녁에는 아내가 콩나물밥을 했다. 오랜만이다. 밥을 푸기도 전에 집안에 콩나물의 비린 듯한 담백한 냄새가 확 퍼졌다. 그동안 죽 현미밥만 먹었는데 모처럼 한 메밥이다. 아내가 처가에서 현미라고 찧어온 게 백미에 가까웠다. 그냥 먹기로 했는데 그걸 현미밥이라고 할 수는 없을 터이다. 글쎄, 콩나물밥에 어떤 역사적 유래가 있는지 모르겠다. 특별히 양식을 아끼거나 밥의 양을 늘리고자 한 거로 보이지는 않는다.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 봐도 구체적 자료가 눈에 띄지 않는다. ‘디지털 부천문화대전’이란 사이트에서는 ‘경기도 부천지역의 향토음식’이라고 소개하고 있는데 글쎄, 콩나물밥이 어디 부천만의 음식이랴! 가난한 살림 탓에 생겨난 음식이 아니라면 이는 '별식'이겠다. 어린 시.. 2019. 5. 3.
갱죽(羹粥), 한 시절의 추억을 들면서 절대빈곤 시대의 추억 ‘갱죽’ 또는 갱시기 지난 주말이었다. 공연히 그게 당겨서 나는 아내에게 갱죽을 끓여 달라고 부탁했다. 아내는 ‘뜬금없이, 웬?’ 하는 표정이었지만, 늘 하던 대로 죽을 끓여냈다. ‘갱죽’은 표준국어대사전에 ‘시래기 따위의 채소류를 넣고 멀겋게 끓인 죽’으로 올라 있다. 소리가 주는 느낌이 아주 토속적이어서 ‘고장 말’인가 싶지만 천만에 국 ‘갱(羹)’자에다 죽 ‘죽(粥)’를 쓴 표준말이다. ‘갱(羹)’은 무와 다시마 따위를 넣고 끓인 제사에 쓰는 국()이니, 갱죽은 거기다 식은밥을 넣은 국인 셈이다. 인터넷에 검색했더니 ‘위키백과’에서는 내 고향인 ‘경상북도 칠곡군의 향토음식’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위키백과에 그런 소개가 올라간 것은 미루어 짐작하건대 칠곡군과 경북과학대학 향토문화.. 2019. 4. 25.
무, 못나도 맛나고 몸에 이롭다! 조선 사람에게 가장 가까운 채소 ‘무’ 이야기 ‘무’는 다육질(多肉質)의 뿌리를 얻기 위해 기르는 채소다. 김치를 담그는 데 빠지지 않는, 배추와 함께 ‘조선사람’(돌아가실 때까지 내 부모님께서 즐겨 쓰던 말이다.)에게는 가장 가까운 채소라 할 수 있다. 그래선지 고추를 더하여 이 셋을 3대 채소라고도 하는 모양이다. 무, 배추와 함께 조선 사람에게 가장 가까운 채소 원산지는 지중해 연안설, 중앙아시아·중국설, 인도·서남 아시아설 등이 있으나 정확히는 알 수 없다. 이집트 피라미드 비문에 이름이 나오는 거로 보아 재배된 역사는 꽤 오래된 것으로 본다. 중국에서는 기원전 400년부터 재배되었다. 한반도에서도 삼국시대부터 재배하였던 듯하나, 문헌상으로는 고려 시대에 중요 채소로 취급된 기록이 있다고 한다. .. 2019. 4. 5.
진달래 화전과 평양소주 진달래 화전을 안주 삼아 평양소주를 마시다 봄이 무르익기 전에 개울가에 가서 버들피리를 만들어 보고 싶었다. 궁싯거리다가 오후에 길을 나섰다. 시 외곽의 시골 쪽으로 나가다 우연히 근처에서 나무로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는 선배 교사들을 만났다. 강권을 뿌리치지 못하여 이분들의 집으로 갔다. 한 이태쯤 되었는가, 이제 어깨를 나란히 한 집 세 채가 주변 풍경 속에 무던하게 녹아 있었다. 처마 밑에 키 큰 진달래가 피어 있었는데, 안주인 두 분이 나란히 서서 그 꽃잎을 따기 시작했다. 화전(花煎)을 부치겠다고 한다. “화전이라……, 부쳐보셨던가요?” “아뇨, 말만 들었지 부쳐보진 못했어요.” 그렇다. 그러고 보니 나도 말만 들었지 그걸 직접 먹어 본 기억이 없다. 어릴 적에 어머니와 누님들에게서 화전놀이 .. 2019. 3. 31.
쑥, 혹은 한 시절의 그리움 쑥을 뜯어 쑥국을 끓이다 처가에 다녀오면서 장모님께서 뜯어 놓으신 쑥을 좀 얻어왔다. 여든이 가까워져 오는 노구를 이끌고 들을 다니셨을 노인을 생각하면 마음이 짠해 온다. 그나마 여기보단 남쪽이어서 쑥 뜯기도 수월했으리라 하는 게 위안이다. 식탁에 오른 쑥국, 한 시대의 애환 쑥국을 끓여 먹자고 주문했더니 아내는 이튿날 아침에 냉큼 국을 끓여냈다. 아직 여린 쑥 향이 아련하다. 아이들에겐 낯선 향기지만 쑥이나 미나리, 쑥갓 같은 나물이나 채소의 향기는 우리네 세대에겐 한 시대를 환기해 주는 추억이다. 미각은 단순히 맛을 느끼는 수준이 아니라 한 시대의 삶과 그 애환을 기억해 내주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나는 향신료 따위의 향에 익숙하지 않다. 그러나 채소나 나물이 가진 은은한 향기는 다.. 2019. 3. 19.
‘등겨장’, 한 시절의 삶과 추억 경북 지방의 향토 음식 ‘등겨장(시금장)’ 이야기 ‘등겨장’이라고 있다. 고운 보리쌀 겨로 만드는 경상북도 지역의 별미다. 두산백과사전에는 ‘시금장’이라는 이름으로 올라 있다. 그러나 경상도에선 ‘딩기장’이라 하면 훨씬 쉽게 알아듣는다. ‘딩기’는 ‘등겨’의 고장 말이다.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만 해도 우리는 봄이나 가을에 등겨장의 그윽한 맛을 즐길 수 있었다. 등겨장, 경북 지역의 별미 등겨도 종류가 여럿이다. 일찍이 부모님의 방앗간에서 방아를 찧었던 전력이 있어 나는 등겨에 대해서 알 만큼 안다. 벼를 찧을 때 현미기를 거쳐 나온 등겨는 ‘왕겨’인데 이는 주로 땔감이나 거름으로 쓰인다. 껍질이 벗겨진 현미가 정미기를 여러 차례(이 횟수에 따라 ‘7분도, 8분도’라고 하는 ‘분도’가 정해진다) 돌아 나.. 2019. 3. 10.
‘뜨물’ 숭늉을 마시며 쌀 뜨물로 끓인 숭늉 겨울 들면서 가끔 아내가 식후에 쌀뜨물을 숭늉 대신 내놓기 시작했다. 펄펄 끓인 쌀뜨물은 불어가면서 천천히 마셔도 좋고, 거기 밥을 조금 말아서 먹는 것도 괜찮다. 세월이 세월이니만큼 무어 그리 각별한 맛이 있을 턱은 없다. 그러나 뜨겁게 김이 오르는 쌀뜨물을 마시고 있노라면 어린 시절의 기억을 고스란히 떠올려주곤 해서 아내와 나는 그 시절을 애틋하게 추억하기도 한다. ‘뜨물 숭늉’의 유년 어릴 적에 식후에 숭늉으로 먹곤 했던 뜨물 숭늉은 고작 두세 식구의 밥을 지어내는 압력밥솥에서 끓여내는 요즘 뜨물과는 비교할 수 없다. 윤이 나는 까만 무쇠솥에 불을 지펴서 짓는 밥의 밥맛도 밥맛이려니와 밥을 푼 뒤에 다시 뜨물을 붓고 아궁이에 조금 더 불을 지펴서 끓여내는 뜨물 숭늉을 후후 불어.. 2019. 2. 23.
미나리, 미나리강회, 그리고 봄 풍성한 봄의 향기, 미니리강회가 밥상에 올랐다 공연히 어느 날, 아내에게 그랬다. 요새 시장에 미나리가 나오나? 그럼, 요즘 철이지, 아마? 왜 먹고 싶어요? 그러고는 나는 미나리는 잊어버렸다. 그런데 어제 아침 밥상에 미나리강회가 올랐다. 서둘러 교회에 가야 하는 일요일 아침이라 좀 약식이긴 했다. 그러나 입안에서 퍼지는 그 향은 예전 그대로다. 아침상에 오른 미나리강회 인터넷에서 미나리를 검색했더니 한 지방 신문의 미나리 수확 기사가 뜬다. 부산시 기장군 철마면이란다. 미나리꽝에서 농민들이 얼음을 깨고 미나리를 수확하고 있는데 정작 그게 미나리꽝인지 어떤지는 금방 짚이지 않는다. 얼음에 덮인 논에 비치는 것은 웬 붉은 빛이 도는 나뭇잎 같은 것일 뿐이다. ‘미나리를 심는 논’을 ‘미나리꽝’이라고 한다.. 2019. 2. 19.
‘오그락지’와 ‘골짠지’ 무말랭이로 담은 김치 ‘오그락지’ ‘골(곤)짠지’라고 들어 보셨는가. 골짠지는 안동과 예천 등 경상북도 북부지방에서 ‘무말랭이 김치’를 이르는 말이다. ‘짠지’는 ‘무를 소금으로 짜게 절여 만든 김치’인데 여기서 ‘골’은 ‘속이 뭉크러져 상하다.’는 의미의 ‘곯다’에서 온 것으로 보인다. 잘게 썰어서 말린 무는 곯아서 뒤틀리고 홀쭉해져 있으니 골짠지가 된 것이다. 안동 '골짠지'를 우리 가족은 '오그락지'라 부른다 그러나 우리 집에선 아무도 그걸 골짠지로 부르지 않는다. 우리 식구들은 골짠지 대신 ‘오그락지’라는 이름을 쓴다. 이는 내가 나고 자란 경상북도 남부지방 칠곡의 고장 말인데, ‘골’ 대신 ‘곯아서 오그라졌다’는 의미의 ‘오그락’이라는 시늉말을 붙인 것이다. 남의 고장 말과 내 고장 말이라는 것.. 2019. 1. 29.
‘된장녀’도 콩잎쌈에는 반해버릴걸! 피로 유전하는 한국인의 원초적 미각 인간의 감각 중에서 가장 원초적인 것은 미각인 듯하다. 미각은 단순히 맛을 느끼는 수준이 아니라 한 시대의 삶과 그 애환을 기억해 내는 까닭이다. 갓 구워낸 국화빵의 바스러질 것 같은 촉감, 학교 앞 문방구의 칸막이 나무상자의 유리 뚜껑을 열고 꺼낸 소용돌이 모양의 카스텔라가 온몸으로 뿜어대던 황홀한 냄새를 기억할 수 있는가. 깊은 밤 완행열차에서 목메어 가며 나누어 먹던, 껍질 벗긴 찐 달걀의 매끈한 몸뚱이가 선사하는 감촉 따위를 기억하시는가. 그것도 단순한 맛이 아니라, 우리들 가난한 성장의 길목에 명멸해 간 한 시대의 추억으로 그것을 되새길 수 있으신가. 이 질문에 선선히 답할 수 있다면 그는 한국전쟁 후 태어난, 이른바 제1차 베이비붐 세대라 해도 크게 틀리지 .. 2019. 1.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