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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길 위에서 505

멋있지 않아도 좋다! 건강하게 돌아와다오! 해병 신병 교육훈련 수료식 참관, 면회기 ‘그래도 군대는 가야 한다’는 ‘숙맥’ 조카[기사 바로 가기]는 기어코 입대했다. 조카는 군대를 마치고 복학하는 타이밍까지 고려해 육군에 응모했다. 그러나 지원자가 몰리는 바람에 입대에 실패한 조카는 궁여지책으로 해병대에 지원했다. “하필이면 해병대야. 그러잖아도 고생스러울 텐데 굳이 해병대를 지원할 게 뭐람.” 친지들의 근심도 당연히 컸다. 한 다리를 건너긴 했어도 나 역시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30년도 전의 기억이긴 하지만 나도 해병에 대한 인상이 별로였기 때문이다. 물론 세월이 많이 흘렀다. 군대도 달라졌다는 걸 모르는 바 아니지만, 여전히 군대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에는 트라우마가 겹겹이 묻어 있지 않은가. 그러나 아무도 녀석의 입대 결심을 말리.. 2020. 6. 8.
팔자에 없는 ‘종합소득세’를 내다 소액의 원고료 수입 때문에, ‘종합소득세’ 자진 신고 임금을 받아 생활하는 모든 봉급생활자처럼 ‘세금’에 관해선 나는 꿀릴 게 없는 사람이다. 우리들의 소득은 얼음같이 드러나 있는, 이른바 유리 지갑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매월 세금을 공제한 급여를 받고, 연말에는 원천징수한 세액의 과부족을 정산한다. 그러니 우리는 비록 자의는 아니지만, 가장 모범적인 납세자인 셈이다. 봉급생활이 20년이 넘었지만 나는 여전히 내 소득에 매기는 세금의 메커니즘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연말정산 때면 으레 가짜 약값 영수증 따위를 만들어 제출하던 시기에도 나는 한 번도 그러지 못했다. 물론 그건 내가 양심적이어서가 아니라, 그걸 귀찮고 성가신 일로 여겼기 때문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런 행위를 통해 내가 얻을 수 있는 .. 2020. 6. 6.
백선엽과 필리프 페탱, ‘구국’과 ‘반역’ 사이 백선엽 현충원 안장 관련 논란... ‘국가반역자’를 기리지 않는 프랑스 최근 한국전쟁의 ‘영웅’이면서 ‘친일반민족행위자’이기도 한 백선엽(1920~ ) 예비역 대장과 관련 뉴스가 뜨겁다. 언론이 올해 100세가 된 백 대장을 불러낸 것은 그가 사망하게 되면 ‘국립묘지에 안장’하는 것이 적절한지를 두고 찬반이 극단적으로 엇갈리기 때문이다. ‘친일반민족행위자’와 ‘한국전쟁 영웅’ 사이 한국전쟁 초기 전세를 뒤집은 ‘낙동강 다부동 전투(1950)’를 비롯하여 ‘평양전투(1950)’와 ‘중공군 춘계공세(1951) 저지’ 등 여러 차례 승전으로 태극무공훈장을 두 차례나 받은 백선엽에게 국립현충원에 안장될 자격은 충분하다. 그가 이명박 정부 때 우리나라 최초의 ‘명예 원수’로 추대될 뻔했던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2020. 6. 1.
캠프 캐럴에 묻힌 ‘고엽제’, 혹은 주둔 50년 경북 칠곡군 왜관읍 소재 미 주둔군 캠프 캐럴과 ‘고엽제’ 인터넷에서 맹독성 고엽제인 ‘에이전트 오렌지(agent orange)’가 대구 인근 미군기지 안에 대량으로 파묻혀 있다는 표제를 읽은 것은 오늘 정오께다. ‘대구 인근 미군기지’라면 더 볼 게 없다. 아니나 다를까, 인터넷 기사는 그 기지가 칠곡군 왜관읍에 소재한 ‘캠프 캐럴’이라고 전하고 있다. 1978년 캠프 캐럴에 묻힌 ‘에이전트 오렌지’ 낙동강을 끼고 있는 왜관읍은 칠곡군청 소재지다. 조선 시대 일본인이 통상을 위해 머물던 집단 거주지였던 보통명사 ‘왜관(倭館)’이 고유명사로 남은 고장이다. 아시아 최대 군수 보급기지라는 캠프 캐럴(Camp Carrol)이 왜관에 자리 잡은 것은 1959년이다. 군은 아니지만 ‘일본’이 물러간 자리에 미군.. 2020. 5. 24.
아내 생일에 생일에 아내는 손수 밥을 짓고 밥상을 차렸다 아내의 생일이다. 아내는 손수 끓인 미역국에다 엊저녁에 해 둔 밥으로 식탁을 차렸다. 그 식탁에 앉기가 좀 민망했다. 딸애는 뒤늦은 공부 때문에 해외에 머물고 있고, 아들 녀석은 서울에 있다. 그렇다고 아내의 생일이라고 내가 안 하던 밥을 지을 수는 없지 않은가. 생일날인데……, 미역국도 손수 끓여서 먹어야 하는구먼, 하고 내가 겸연쩍게 말하자, 아내는 심상하게 밥도 엊저녁 밥인데 뭘, 하고 대수롭잖게 받아넘겼다. “어쨌든, 당신 같은 사람을 내게 보내주어서 나는 참 행복했어. 당신이 태어나 주어서 정말 고마워.” “고마워요. 그렇게 말해 줘서…….” 예전 같으면 손발이 오그라들 수준의 아첨이지만, 나는 아주 천연덕스럽게 그런 말을 했다. 그리고 그 말을 하면.. 2020. 5. 22.
‘잠’을 생각한다 초저녁잠, 노화의 증거? 언제부터인지 정확히 말하기는 어렵다. 그게 노화의 증거라고 여기게 되기 때문인지 저도 몰래 그 기산점을 늦추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넉넉잡아 쉰을 넘기면서부터라고 해 두자. 어느 날부터 초저녁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밤 9시를 전후해 쏟아지는 잠을 감당하기 어려워진 것은. 어느 날 찾아온 ‘초저녁잠’ 천하에 없는 드라마라도 혹은 영화나 소설을 보거나 읽고 있더라도 갑자기 엄습해 오는 잠 앞에는 당해낼 재간이 없다. 그렇게 고꾸라지면 두어 시간을 죽은 듯 잔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실컷 잤다 싶어서 깨어나면 자정 무렵이다. 밤이 길다는 사실을 절감하는 순간이 마치 꿈결처럼 다가온다. 전전반측, 옛 국어 교과서에나 나올 만한 상황이 기다리고 있다. 한 시간쯤은 기본이고, 운수 사나우.. 2020. 5. 21.
‘나이 듦’ 받아들이기 ‘나이 듦’이든, ‘노화’든 받아들여야 할 때가 되었다 며칠 전 일이다. 퇴근하면서 며칠간 미뤄두었던 병원을 찾았다. 지난해 건강진단에서 나는 고지혈증 의심 판단을 받았고, 콜레스테롤을 떨어뜨리기 위해 지난달부터 약을 먹고 있었다. 지난 주말에 약이 떨어졌고 새로 약을 처방받으러 다시 병원에 들른 것이다. 내가 들른 병원은 가정의학과 의원이다. 젊은 의사가 시간에 쫓기지 않는 느긋한 자세로 매우 친절하고 상세하게 진료해 주어서 우리 가족들이 자주 이용하는 곳이다.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조금 불안해지는 기분을 간신히 가누고 있었다. 지난번 진료에서 혈압을 재고 의사는 ‘많이 높다’고 말했다. 나는 지난해 치른 두 번의 내시경 검사 때 쟀을 때 정상이었다고 대답하면서 무언가 쫓기는 기분이 들었다. 혈압.. 2020. 5. 19.
그는 왜 안동시민에게 주먹밥을 나눠줬을까 ‘5·18 기념 안동 주먹밥 나누기’ 행사 준비한 차명숙씨 이 땅의 슬픈 현대사는 ‘오월’을 보통명사에서 고유명사의 자리로 끌어올렸다. ‘계절의 여왕’과 ‘메이퀸’ 따위의 달콤한 어휘로 싱그러웠던 오월은 그러나, 1980년 빛고을의 고통스러운 항쟁의 시간을 거치면서 자유의 하늘을 찢는 날카로운 총성과 핏빛으로 거듭 피어났기 때문이다. ‘고정간첩의 사주로 일어난 폭동’에서 ‘사태’를 거쳐 공식적으로는 ‘민주화 운동’으로 정착했지만, 여전히 빛고을의 오월은 혼란스럽다. 5·18을 ‘민중항쟁’으로 부르는 사람만큼 그것을 ‘사태’와 ‘폭동’으로 이해하는 이의 숫자도 만만치 않으니 말이다. 영남 사람들에게 5·18광주민중항쟁은… 스물여덟 돌 5·18을 맞아 5·18 기념재단이 벌인 설문조사 결과, 국민 열 중 하.. 2020. 5. 18.
퇴출? ‘임을 위한 행진곡’ ‘임을 위한 행진곡’을 퇴출한다고? 국가보훈처가 새 ‘오월의 노래’를 제정한다고 나부대다가(!) 여론의 주목을 받게 된 게 지난해 12월 초순쯤이다. 당시 보도를 보고 나는 “‘임을 위한 행진곡’에 담긴 건 피로 얼룩진 역사와 진실이다”라는 글을 썼다.(☞ 글 바로 가기) 보훈처가 들끓는 여론 앞에 무릎을 꿇고 ‘생뚱맞은 계획’을 철회한 것은 잘 아시는 바와 같다. 5·18 민중항쟁 서른 돌을 앞두고 보훈처가 다시 슬그머니 5·18 기념식장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퇴출하려 는 모양이다. 보도(☞ 기사 바로 가기)에 따르면 오는 18일 광주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열리는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은 공식행사에서는 빠지고 대신 식전행사에 배치됐다는 것이다. ‘임을 위한 행진곡’ 공식행사에서.. 2020. 5. 17.
‘임을 위한 행진곡’에 담긴 건 피로 얼룩진 ‘역사와 진실’이다 정부, ‘임을 위한 행진곡’을 내치겠다고? 보훈처, 새 ‘오월의 노래’를 제정한다고?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은 진보진영의 집회와 시위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민중 의례’에서 절정을 이룬다. 그것은 그 노래의 역사성과 노랫말에 어린 격정과 비장미가 참가자들의 마음을 격동케 해 주기 때문이다. 이 노래를 통하여 사람들은 5·18 민중항쟁의 역사적 의미를 되짚으면서 개인적 자아를 역사적 자아로 상승시키는 심리적 체험을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이 ‘5·18 공식 추모곡’의 지위를 잃을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보도(경향신문 12월 1일 자)에 따르면 “정부가 내년 광주 민주화 항쟁 30주년을 맞아 5·18 기념식장에서 부를 ‘5월의 노래’를 만들기로 했기 때문”이다. 국가보훈처는 가.. 2020. 5. 17.
‘역사’를 거부하는가 - 5·18의 수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5·18 기념식 의전에서 뺀 정부 서른세 돌을 맞는 5·18광주민중항쟁이 수난을 겪고 있다. 반역사, 몰역사적 극우세력의 준동이 일상화된 가운데 수구 종합편성채널조차 비열한 방식으로 5·18에 대한 폄훼와 왜곡에 가담했다. 끝내는 정부에서도 행사위원회의 요구를 거부하고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5·18 기념식 의전에서 빼기에 이르렀다. 정부는 민주화운동의 상징인 ‘임을 위한 행진곡’에 공식 기념곡에 준하는 지위를 부여하지 않기로 했다는데 그 이유가 거의 만화 수준이다. 국가보훈처는 “‘임을 위한 행진곡’은 일부 노동·진보단체에서 민중 의례 시 애국가 대신 부르는 노래이며 정부 기념식에서 참석자들이 일어나 주먹을 쥐고 흔들며 노래를 부르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의견 등이 제기돼.. 2020. 5. 16.
선택, ‘노년의 거취’를 생각한다 노년, ‘요양원’ 과 극단적 선택 일곱 해 전, 장인어른께서 돌아가실 때다. 인근 병원에 입원했다가 결국 거기서 세상을 떠나셨다. 칠팔 명의, 거의 회생 가능성이 없는 중증의 노인들이 나란히 누워 있는 병실이었는데, 그나마 가족들이 찾아와서 환자를 살펴보고 가는 가족은 몇 되지 않았다. 아내는 병실을 드나들 때마다 한숨과 함께 눈물짓곤 했다. “거긴 마치 죽음을 기다리는 대기소예요. 살아 있기만 하지, 그게 산목숨이야. 송장들이지…….” 그 송장과 다름없는 산목숨 가운데 자신을 낳은 육친이 누워 있고, 그것이 자신이 맞닥뜨린 현실이라는 사실을 아내는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결국, 장인어른은 거기서 고단한 당신의 삶의 마감하셨고, 우리는 고향 선영에서 한 줌의 재로 당신을 배웅할 수밖에 없었다. 노인병원.. 2020. 5.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