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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교단(1984~2016)에서141

삼월을 맞으며 20년 만에 여학교로 돌아와서 3월이다. 내 탁상 달력에는 ‘온봄달’이라 이름 붙이고 있는데, 그 ‘온’의 의미가 잘 짚이지 않는다. 아마 ‘온전하다’는 의미인 듯한데, 따로 사전을 찾아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니 그러려니 하고 짐작하고 만다. 1일은 3·1절. 오늘 저녁에는 시(市)에서 ‘횃불 만세운동’ 재현 행사를 연다고 한다. 행사 사진을 몇 장 찍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일찌감치 행사장 인근의 건물을 물색해 사진 찍을 장소를 봐 둬야 하는데, 썩 자신이 생기지 않는다. 삼각대를 설치해 야경을 찍은 경험이 없어서다. 안동은 최초의 항일 독립운동인 ‘갑오의병(1894)’이 봉기한 곳으로 경술국치를 전후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어 순국한 지사를 열 분(전국 60여 분)이나 낳았고, 단일 시군으로는 시도 단위.. 2022. 2. 28.
고별-나의 ‘만학도’들에게 방송통신고 졸업생 여러분께 어떤 형식으로든 나의 만학도, 방송고 졸업반인 당신들에게 마음으로 드리는 인사가 필요하다는 걸 나는 염두에 두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설날 연휴에 가족여행을 다녀오는 바람에 마땅히 시간을 낼 수가 없었습니다. 졸업식은 14일이고 여행에서 돌아온 것은 12일입니다. 호기롭게 떠난 여행이었지만 강행군을 하면서 여독이 만만찮았고, 거기다 가족 모두가 독감을 앓기 시작했습니다. 오한과 발열로 하룻밤을 꼬박 밝히면서 저는 문득 이게 내가 31년을 머문 학교를 떠나면서 치러야 할 통과의례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만학도들에게 건네는 고별인사 여행의 첫 3일은 좀 무더웠고 마지막 날은 추웠습니다. 공항에서 몸을 잔뜩 오그리고 비행기를 기다리면서 그런 생각은 더해졌습니다. 귀가해 하룻밤을 .. 2022. 2. 19.
간접체벌 허용? ‘묘수’보다 ‘원칙’이 필요하다 교육과학기술부의 ‘간접체벌’ 허용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안 확정에 부쳐 교육과학기술부가 ‘간접체벌’을 허용하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안을 확정했다. 이 개정안에는 ‘학교장이 학칙을 통해 학생의 권리 행사 범위를 제한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진보 성향 교육감들의 갈 길이 어지러워지고 바빠질 수밖에 없을 듯하다. 개정안에 대한 진보 성향 교육감과 해당 시도 교육청에 반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 개정안이 시행되면 진행 중인 ‘학생인권조례’와 ‘체벌 전면 금지’ 지침은 수정이 불가피해지기 때문이다. 시행령은 시도 교육청의 조례나 지침보다 상위 법령이다. 따라서 이 시행령 개정안은 지금까지 진행된 시도 교육청의 계획은 송두리째 뒤흔드는 것이다. 개정안은 신체와 도구를 이용한 직접적 체.. 2022. 1. 18.
아이들은 왜 점점 작아져 갈까 아이들은 점점 어려지는 것 같다 아이들을 가르친 세월이 제법 되었다. 20년쯤을 넘기니까 젊을 때는 젊어서, 바쁠 때는 바빠서 눈에 뵈지 않던 것들이 수월찮게 눈에 들어온다. 초임 시절에는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유독 눈에 더 띄곤 했는데 어느 날부터 그런 경계가 흐려지더니 그것과 무관하게 아이들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게 말하자면 ‘연륜’인지 모르겠다. 새삼 눈에 밟히는 것 중 하나가 해마다 아이들은 점점 어려진다는 점이다. 특히 고등학생과는 달리 중학생은 그 변화가 두드러진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갓 입학한 아이들은 여전히 초등학생이다. 고등학교 근무를 하다 중학교 1학년을 맡았던 후배 교사의 얘기다. 점심시간인데 아이들이 식당에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해서 갔더니 아이들은 교실을 지키고.. 2022. 1. 17.
“그러면 어때? 교육만 살리면 되지” 이명박 대통령 시대 교육 정책의 변화와 굴절될 서민들의 ‘희망’ 인수위 활동이 시작된 이래 그 당당한 발걸음은 가히 세상을 요동치게 하는 듯하다. ‘교육부 해체’로까지 표현된 교육 정책에 이르면 그것은 거의 ‘혁명전야’를 방불케 한다. 혁명? ‘혁명’이라면 가슴 설렐 이들이 많을지 모르지만 좀 냉정해지지 않으면 안 되겠다. 2008년 벽두를 흔들고 있는 이 혁명의 정체는 ‘왕후장상의 씨’ 운운하며 세상을 뒤엎은 그것과는 분명히 멀어 보이니 말이다. 1월 3일부터 5일까지 장봉군 화백이 그리는 그림판의 주제는 새 정권과 ‘인수위’의 ‘맹활약’으로 드러난 ‘교육 정책’이다. 첫날 그림에서 학생과 학부모 등 교육 주체는 쥐띠해에 맞추어 쥐로 비유되고 새 정부의 교육 정책은 그들에게 투여될 주사제로 그려진다. .. 2022. 1. 9.
“교장이 수업하면 학교가 혼란에 빠진다”고? 경기도 교육청의 관리자 수업 제도화 논란 아침 출근길에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라디오를 켜 놓는다. 8시 전후엔 대개 채널마다 뉴스지만 나는 ‘김현정의 뉴스쇼’ 때부터 채널을 로 고정해 놓았다. 며칠 전(18일), 김현정 대신에 박재홍이 진행하는 ‘뉴스쇼’는 경기도 교육청의 ‘교장 수업 논란’을 다루었다.[기사 바로 가기 ☞] 경기도 교육청에서 도입한다는 교장, 교감 등 관리자의 수업 참여 제도에 대해서 나는 흥미도 없을뿐더러 아는 것도 거의 없다. 물론 그런 제도를 도입하겠다는 동기가 무엇인지, 제도가 가져올 학교의 변화가 무엇인지에 대해 전망하지도 못한다. 경기도 교육청, ‘교장 수업’ 논란 뉴스쇼의 초대 손님은 찬성 의견의 현직 초등학교 교장(송병일·고양시 상탄초)부터 나왔다. 5학년 역사 수업과 6.. 2021. 12. 23.
조합비 ‘원천징수’ 금지? 그런다고 전교조가 죽을까? 이명박 정부의 졸렬한 교원노조 정책, 조합비 ‘원천징수’ 금지 난데없는 조합비 ‘원천징수’ 금지 어제 지회에서 실시한 2010년도 지회장 선거가 있었다. 조합원 교사들은 쉬는 시간마다 학년 교무실에 마련된 투표소에 잠깐씩 들러 한 표를 행사했다. 예년처럼 단독 후보에 대한 찬반투표였지만, 분회에서는 정작 투표율보다는 함께 진행한 조합비 원천징수 동의서 작성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던 것 같다. 새삼스럽게 조합비 원천징수 동의서가 튀어나온 이유는 참 민망하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 격으로 멀쩡하게 잘 내어 오던 ‘조합비 징수’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2010년부터 시행되는 개정 ‘공무원보수규정’을 개정되었는데 이 새 ‘규정’의 핵심은 노동조합비 원천징수에 관한 조항이다. 조합 가입만 확인되면 일괄.. 2021. 12. 22.
‘봉사활동’을 생각한다 점수로 계량된 봉사, 과장과 포장 통계청장이 발행한 ‘봉사활동확인서’가 도착했다. 그 전에 이미 아이들에게서 저마다 개인별로 출력한 확인서를 받았지만 최종적으로 이 국가기관의 장이 아이들의 ‘봉사활동’을 증빙하는 서류를 보내온 것이다. 우리 반 아이들 29명 가운데 27명이 이 봉사활동에 참여했단다. “세월 좋구나. 국가기관에서조차 너희들 봉사활동을 보태주는구나…….” 나는 좀 심드렁하게 말하고 말았지, 기실 기분은 좀 씁쓸했다. ‘2010 인구 주택 총조사’가 진행되면서 통계청이 중고생들의 ‘인터넷 조사 참여 및 홍보’ 활동을 봉사활동으로 인정해 준 것이다. 실제로 아이들이 인터넷으로 이 조사에 참여한 게 통계청의 일손을 얼마나 덜었는지는 알 수 없다. 5분 남짓에 2시간 봉사 인정? 그러나 아이들이 .. 2021. 12. 18.
공부 못 하면 굶어라? 대입 기초생활수급자 생활지원비도 수능 성적 6등급 이상만 지급 아침에 를 읽다가 눈이 튀어나오는 줄 알았다. 오늘 자 8면에 실린 기사 제목은 “수능성적 낮다고 ‘빈곤층 생활비’ 끊겠다니…”다. 교과부가 대학에 입학한 기초수급자에게 지원하는 200만 원의 생활지원비는 ‘수능 3개 영역에서 6등급(전체 9등급) 이상 받아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세 과목 모두 상위 77% 안에 들어야 생활비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기초생활수급자 생활지원비는 정부가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를 도입하면서 기초생활수급자 무상장학금(연간 450만 원) 혜택을 전액 삭감하고, 기초생활수급자도 일반 학생과 마찬가지로 학자금 대출 이자를 연 5.8% 수준에서 부담하도록 한데 따른 제도다. 대신 이들에게는 생활지원비 명목으.. 2021. 12. 17.
서울시 교육청의 ‘교사 부당 징계’에 부쳐 서울시 교육청의 일제고사 관련 교사 7명 부당 중징계 서울에서 일곱 분의 교사가 중징계 처분을 받았다는 소식을 마치 먼 나라 일처럼 들었다. 파면 3명, 해임 4명. 1989년의 이른바 ‘교사 대학살’ 이후 19년 만의 집단 징계다. 그것은 19년이란 시간 속에 포함된 ‘역사’와 ‘민주주의’, ‘개혁과 진보’ 따위의 개념을 깡그리 짓밟아 버리는 만행이다. 끓어오르는 분노는 차라리 허탈하다. 상식을 간단히 뒤집어 버리는 이런 소식은 이미 식상할 정도인데다가 이 분노가 무력한 분노에 그칠 수밖에 없다는 걸 절감하는 까닭이다. 가장 교육적이어야 할 교육계에서 가장 비교육적인 방식으로 교사들이 교단에서 배제되는 이 야만의 시간 앞에 우리는 할 말을 잃는다. 징계의 부당성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198.. 2021. 12. 15.
파시(罷市), 수능 이후의 학교 풍경 수능 이후의 학교 수능이 끝나고 난 학교는 일종의 파시(罷市) 같다. 반드시 그래서 그렇지는 않을 텐데, 학교는 일종의 공황상태에 빠진 듯한 분위기다. 한 치 오차도 없이 아귀를 맞추어 돌아가던 톱니바퀴의 움직임이 일순 멎어버린 것과도 같은 고즈넉함이 교정에 가득한 것이다. 졸업반 아이들에게 예전의 활기를 찾기는 어렵다. 누가 무어라 한 것도 아닌데도 아이들은 저지레한 아이들처럼 맥을 놓고 있다. 아이들은 인생을 다 살아버린 듯한 표정으로 가만가만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교정을 조심스레 오가고 있다. 이들의 등교가 늦어지면서 출근길의 교문 주변도 쓸쓸해졌다. 더불어 연일 짙은 안개가 교정에 자욱하다. 성큼 겨울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교정의 잎 벗은 나무들 사이로 하나둘 등교하는 졸업반 아이들의 모습도 쓸쓸.. 2021. 11. 30.
나도 가끔은 ‘교감(校監)’이 부럽다 ‘교실’이 ‘도살장’이 된다고? 1990년대만 해도 평교사로 정년을 맞는 선배 교사를 바라보는 눈길에는 내색하지 않는 ‘짠한 감정’이 얼마간 담겨 있었다. 후배 교사들로서는 한눈팔지 않고 교육의 외길을 걸어온 선배 교사들에 대한 경의에 못지않게 그가 정년에 이르도록 수업 부담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에 대한 연민의 감정을 가누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알게 모르게 세상도 변했다. 예전과 달리 이제 사람들은 교사들에게 ‘승진이 필수’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교감으로 승진하거나, 장학사·연구사로 전직하지 않고 교단을 지키는 교사들을 바라보는 후배 교사들의 시선에 예전 같은 연민이 묻어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승진’은 필수가 아니다? 무엇보다 요즘엔 평교사로 정년을 맞이하는 선배 교사들이 잘 눈에 띄지 .. 2021. 11.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