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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가겨 찻집 200

‘길들여지다’는 ‘길들다’로, ‘잊혀진’도 이제 그만 [가겨 찻집] 불필요한 피동과 ‘이중 피동’ 표현들 10여 년 전, 여학교에 근무할 때, 아이들과의 관계를 다룬, “우린 서로에게 잘 길들여지고 있다”란 제목의 글을 쓴 적이 있었다. 신학년도에 담임으로 아이들을 만난 지 한 달, 아이들과의 편안해진 관계를 기꺼워하며 쓴 글이었다. “한 달이 덜 되었지만, 아이들은 내게 잘 ‘길들여지고’ 있다. 어린 왕자가 말했던 것처럼 ‘길들여진다’는 것은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다. 따라서 동시에 나도 아이들에게 잘 길들여지는 중이다. 우리는 서로를 길들이면서 ‘서로가 필요한 관계’,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게 되는’ 사이가 되고 있는 것일까.” 얼마 전, 새 블로그에 올리려고 글을 정리하는데 내 문서편집기 ‘아래아 한글 2018’은 그 제목을 비롯하여 본문 곳곳에 .. 2021. 9. 7.
이제, ‘짜장면은 짜장면이다’ 이제, ‘짜장면은 짜장면이다’ “짜장면은 짜장면이다.” “나는 우리나라 어느 중국집도 자장면을 파는 집을 보지 못했다. 중국집에는 짜장면이 있고, 짜장면은 짜장면일 뿐이다.” 시인 안도현이 쓴 어른들을 위한 동화 “짜장면”의 후기에 쓴 글이다. 그렇다. 짜장면은 짜장면일 뿐이다. 그런데 이 재미없는 동어반복을 가능하게 한 것은 짜장면의 표준어가 ‘자장면’이었기 때문이다. ‘자장면’은 일부 아나운서들이 방송에서나 쓰던 말로 정작 다수 언중(言衆)과는 인연이 없는 죽은 낱말이었다. 그런데 그 짜장면이 다시 표준말의 지위를 얻었다. 국립국어원(원장 권재일)이 국민이 실생활에서 많이 사용하고 있으나 그동안 표준어로 인정되지 않았던 ‘짜장면, 먹거리’ 등 39개를 표준어로 인정하고 인터넷으로 제공되는 (stdwe.. 2021. 8. 31.
‘미용실과 스카프, 양산 ’, 더는 ‘여성 전용’ 아니다 [가겨 찻집] 2021년 표준국어대사전 정보 수정 주요 내용 지난 7월 말께 ‘2021년 2분기 정보 수정 주요 내용’이 발표된 걸 뒤늦게 알았다. ‘양산’의 뜻풀이에서 ‘주로 여자들이 볕을 가리기 위하여 쓰는 우산 모양의 큰 물건’에서 ‘주로 여자들이’가 빠졌고, 미용실과 스카프도 같은 형식으로 바뀌었다는 신문 기사를 통해서다. 2021년 2분기 정보 수정 정보가 수정된 낱말은 모두 30개다. ①표제어로 추가된 낱말이 5개, ②표제어 수정이 10개, ③ 원어 수정(한자어의 원문, 그리니까 한자를 수정한 것)이 4개다. 거기다 ④뜻풀이와 용례가 추가된 게 2개, 마지막으로 ⑤뜻풀이 수정이 9개다. (국립국어원 자료 참조) ‘미용실’과 ‘스카프’, ‘양산’은 ⑤뜻풀이가 수정된 경우다. 에서 보는 것처럼 이.. 2021. 8. 27.
손학규의 ‘칩거’, 그리고 토굴·토담·흙집 정치인의 ‘칩거’ 미화? 정계 은퇴를 선언한 새정치민주연합 손학규 상임고문의 근황을 전하는 기사가 각 일간지에 실렸다. 손 고문이 다산초당 인근 백련사 뒤에 있는 거처에 ‘칩거’하고 있다는 소식인데, 어째 그 ‘거처’를 이르는 이름이 두어 차례 바뀌고 있는 듯하다. 최초 기사의 ‘토굴’ 어제(20일) 처음 확인한 기사에선 그 거처의 이름이 ‘토굴’이었다. “‘정계 은퇴’ 손학규 강진 백련사 인근 토굴서 칩거”라는 제목 아래 실린 사진은 슬레이트 지붕의 ‘시골집’이다. 꽤 널따란 마루에 앉아 손 고문은 신발을 꿰고 있고 오른쪽에는 부인인 듯한 여성이 등을 보이고 있는 사진이다. ‘칩거(蟄居)’가 ‘나가서 활동하지 않고 집안에서 죽치고 있음’의 뜻이니 그 공간으로 ‘토굴’은 궁합이 맞는다. 그런데 토굴이란 .. 2021. 8. 21.
뜻을 비트는 ‘~랄지’에 대하여 비타민이랄지 글루코사민이랄지? 언제부턴지 모르겠다. 아마 10년도 훨씬 지난 현상 같다. 강연이나 토론에서 가끔 들었던 표현이었다. 주로 호남 지역의 사람들이 자주 썼던 표현으로 기억된다. 그건 주로 몇 가지 예를 들어서 말해야 할 때 쓰였다. “이는 단위 학교 분회랄지, 시군 지회랄지, 또는 시도 지부랄지 등에서 고민하고 그 대안을 모색해야 할 것입니다.” 주로 명사 뒤에 붙어서 쓰이는 ‘~랄지’는 굳이 분석하자면 ‘~라고 할지’의 줄임말 형태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머리를 갸웃했다. 낯선 표현이었는데 그게 ‘비문(非文)’인지 아닌지 판단하기 애매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표현은 쉽게 퍼져나갔던 것 같다. 활동가들이 주로 쓰던 말이었는데 어느 날부터 학자들과 정치인들이 쓰기 시작했고, 그.. 2021. 8. 7.
교과서 ‘한자병기’ ‘이해력’ 신장? ‘사교육’ 아니고? 교육부의 ‘교과서 한자병기’ 추진 계획에 부쳐 기어코 초등학교 교과서에 한자를 병기할 모양이다. 교육부가 지난해 9월, 2015 개정 교육과정을 발표하면서 초등학교 교과서 한자를 한글과 병기할 것이라고 예고했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한자병기를 추진하는 이유로 ‘인문학적 소양 함양’을 들기까지 했다. 한자병기가 이해력 신장? 학습 부담, 사교육 신장은 아니고? 그동안 한자병기가 동음이의어 등의 이해를 높여 우리 말글의 이해력을 신장시킬 것이라는 주장을 펼쳐 온 한문 학계와 관련 단체들은 교육부의 강력한 원군이다. 그러나 아이들의 이해력 신장보다 먼저 느는 것은 아이들의 학습 부담이고, 사교육이라고 보는 게 옳다. 이미 냄새를 맡은 사교육 업체들도 바빠졌다. 거기에다 초등 교과서 한자병기 운동 단체들의 최대 .. 2021. 8. 3.
문장성분, 제맘대로 생략할 수 없다 [가겨 찻집] 문장성분의 부당한 생략 ② 목적어·부사어·서술어 목적어의 부당한 생략 문장 필수 성분으로 목적어 역시 함부로 생략할 수 없다. 담화 상황에서는 화자와 청자가 맥락을 공유하고 있어 꽤 많은 문장성분을 생략할 수 있지만, 문어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목적어가 생략될 수 있는 경우는 매우 제한적이다. 예컨대 목적어가 같은 두 문장이 이어질 때가 그렇다. “사람들은 그를 사랑하고 깊이 신뢰했다.”라는 문장에서 타동사 ‘사랑하다’와 ‘신뢰하다’의 목적어는 ‘그’로 같다. 그래서 뒤 문장에서 목적어를 생략했다. 다음 문장을 보자. (1) 작품에 손을 대거나 훼손하는 행위를 금합니다. (2) 사람은 남에게 속기도 하고 속이기도 한다. 문장 (1)은 “작품에 손을 대는 행위를 금합니다”와 “작품을 훼손하는.. 2021. 7. 31.
‘주어의 생략’을 ‘주어가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가겨 찻집] 문장성분의 부당한 생략 ① 주어 “그러나, 주어는 없었습니다.” 2007년 12월, 제17대 대통령 선거 중에 당시 한나라당의 나경원 대변인이 ‘눈 하나 깜박이지 않고’ 뇌었다는 그 ‘불후’의 논평이다. 이 논평은 정치적 위기를 넘기기 위해 국어 문법을 불러낸 흔치 않은 사례로 사람들의 입길에 널리 오르내렸다. 그해 대선에서 BBK 주가조작 사건이 문제가 되었는데, 이명박 후보는 그 회사가 자신과 무관하다고 줄곧 주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대선 직전에 결정적인 증거, 그가 “BBK라는 금융 자문회사를 설립”했다고 발언한 동영상이 공개되었고, 문제의 논평은 이때 나온 것이었다. “전 요즘 다시 한국에 돌아와서 인터넷 금융 회사를 창립을 했습니다. 금년 1월달에 BBK라는 금융 자문회사를 설립을.. 2021. 7. 29.
외교부의 일본대사 초치? ‘불렀다’라고 하면 될 것을 [가겨 찻집] 행정용어도 낯선 한자어 대신 편한 우리말로 지난 17일 오후, 텔레비전 뉴스 화면에 뜬 ‘일본대사 초치’라는 자막을 보면서 고개를 갸웃한 사람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기사는 우리 외교부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부적절한 발언을 한 소마 히로히사 총괄공사 문제와 관련해 주한 일본대사를 불러 강하게 항의했다는 내용이었다. ‘초치’와 ‘부르다’ 물론 모든 매체가 ‘초치’를 쓴 건 아니다. 낯선 ‘초치’라는 용어 대신 는 우리말로 ‘불러들여’로 썼고, 공중파 중에선 가 ‘불러’로 썼다. 와 를 비롯하여 , 등과 대부분의 일간지에서는 ‘초치’를 썼다. ‘초치(招致)하다’는 “불러서 안으로 들이다”라는 뜻의 동사다. 이 낱말은 잘 쓰지 않는 한자어일 뿐, 무슨 전문 외교 용어는 아니다. ‘초(招)’는.. 2021. 7. 23.
바른 말글 쓰기의 든든한 ‘도우미’들 바른 말글쓰기를 돕는 안내자들 * 10년도 전의 글이어서 예를 든 사이트의 화면은 지금 조금씩 달라졌다. 그러나 기본적인 사항은 변함이 없으니, 도우미로서의 구실을 여전히 다하고 있다. 어쩌다 블로그를 열고 잡문 나부랭이를 끼적이다 보니 어느새 거기 쓴 글이 사백 편이 넘었다. ‘글 보관함’을 살펴보니 거의 이틀에 한 편꼴로 무언가를 썼다. 굳이 그걸 의식한 것은 아닌데도 꾸준히 글을 쓴 게 자신도 잘 믿어지지 않는다. 글을 쓸 때, 나는 직업이 직업인지라, 비문(非文), 맞춤법, 띄어쓰기 등에 각별한 신경을 기울인다. 명색이 나라말을 가르치는 이가 잘못된 글을 쓰는 것은 민망한 일인 까닭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예전에는 무심했던 부분도 밝히 보고, 모호한 부분은 반드시 확인하는 버릇이 붙었다. 그러.. 2021. 7. 23.
프로야구 ‘올스타전’ 유감 올스타전의 ‘로마자’ 쓰기 ‘동군 : 서군’에서 ‘이스턴 : 웨스턴’으로 2013년 프로야구가 전반기를 마치고 이른바 ‘별들의 전쟁’이라는 올스타전을 치렀다. 연중 한 번뿐인 이 경기를 굳이 챙겨보지 않은 게 언제부턴지 모르겠다. 순전히 그래서였을 것이다. 외화 시리즈를 보다가 막간에 스포츠 채널로 돌렸더니 채널마다 중계가 한창이었다. 그런데 올스타팀의 이름이 이상했다. 동군, 서군이었던 팀 이름이 이스턴, 웨스턴으로 바뀌어 있었던 것이다. 확인해 보니 1982년 프로야구 출범 때부터 동군·서군으로 나누었던 올스타팀은 2009년부터 이스턴·웨스턴 올스타로 바뀌었다고 했다. 이름이 영어로 바뀌었지만, 팀의 구성은 동서로 나뉘던 시절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롯데(부산), 삼성(대구), SK(인천), 두산(잠.. 2021. 7. 20.
국어를 “한글과 한자로 표현되는 한국어”로 바꾸자고? 한글전용시대의 넋나간 선량들 오늘자 10면에 ‘이 시대, 이런 국회의원들이 있습니다!’라는 제목의 광고가 실렸다. 한글학회, 한글문화원,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한글문화연대 등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한글 관련 단체가 모여서 낸 광고다. 광고는 지난 6월 20일 이강래 의원 등 국회의원 22명이 발의한 ‘국어기본법’ 개정안을 규탄하면서 이의 조속한 철회를 호소하는 내용이다. 광고에도 나와 있듯 이 개정안의 골자는 ‘멀쩡한 국어기본법’을 손보는 내용이다. 국회 누리집의 ‘최근 접수 법률안’에 올라 있는 ‘의안 원문’을 받아 보면 기가 막힌다. ‘한자 교육 기본법’을 위한 ‘국어기본법’ 개정 이 개정안이 발의 배경은 지난 6월 7일 김세연(한나라당), 김성곤(민주당), 조순형(자유선진당) 의원들이 이른바 ‘한.. 2021. 7.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