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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교단(1984~2016)에서141

서른넷 풋내기였던 나, 학교에서 잘리다 1989년 전교조 대량해직 사태 …그 순수와 광기의 시대 단순 산술로 스물일곱 살 이상의 성인이라면 누구나 1988년을 겪었다. 그러나 그때 젖먹이였거나 어린애였던 이들에게 그 시절을 떠올리라는 것은 무리다. 그러나 그때 열 살 전후였던 이들에게는 단편적으로나마 그 시절을 기억하는 게 어렵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런 뜻에서라면 서른일곱 살은 ‘1988년의 기억’, 그 상한이 된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신에게 유리한 것 위주로 과거를 기억한다. 의식에 강하게 각인된 기억만 남기고 가치가 없다고 여기는 것은 보거나 들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린다. 이른바 ‘선택적 기억’이다. 그러나 굳이 선택적 기억을 불러오지 않더라도 사람들이 저마다 가진 기억의 층위는 다양하다. 1988년 열등반의 추억 1988년을 서울올림픽.. 2023. 5. 27.
5·10 ‘교육 민주화 선언’ 22돌, 역사의 퇴행 앞에서 교사, 학생, 학부모를 교육 주체로 - 교육 민주화 선언 오늘은 한국 YMCA 중등교육자협의회의 ‘교육 민주화 선언’ 스물두 돌을 맞는 날이다. 오늘은 이른바 ‘놀토’, 늦은 아침을 들고 ‘교육 민주화 선언문’을 다시 읽는다. 1986년 5월 10일이었다. 나는 그때 경주 지역의 한 여학교에서 초임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도대체 그런 움직임이 있었다는 것조차 알지 못했던, 날마다 술을 마시며 동료들과 비분강개하던 시절이었다. 교육 민주화 선언은 “1986년 5월 10일, 서울·부산·광주·춘천 등 4개 지역의 교사들이 YMCA 중등교육자협의회 주최로 열린 제1회 ‘교사의 날’ 집회에서 발표한 교육의 민주화에 관한 선언”(엠파스 백과사전)으로 풀이된다. 당시는 대통령 직선제로의 개헌으로 정치적 민주화를 이룩하.. 2023. 5. 10.
“학생회장으로 뽑혔으니 ‘임명장’ 대신 ‘당선증’ 주세요” ‘직접선거’로 뽑는 각급 학교 학생회장, ‘임명장’ 수여 관행 바꿔야 한다 “19세기 교실에서 20세기 교사들이 21세기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한때 열악한 학교 환경 속에서 보수적·관행적 사고에 찌든 교사들이 자라나는 새로운 세대의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현실을 축약했던 표현이다. 처음 교단에 선 80년대 초반만 해도 한 학급 정원이 55명이었다. 2016년 퇴임 직전 남고에 근무할 때 정원이 35명이었는데도 아이들로 교실은 터져 나갈 것 같아서 50명이 넘던 초임 시절의 교실이 전혀 상상되지 않았었다. 직접선거로 뽑은 학생회장에게 왜 ‘임명장’을 주나? 2000년대 들면서 교실에 냉방기가 보급되고, 수세식 화장실이 보편화되면서 학교 환경은 얼마간 개선되었지만, 여전히 학교는 사회적 진보의 물결을 .. 2022. 10. 7.
교장의 교사 폭행, ‘엎드려뻗쳐’에서 ‘여교사’까지 경기도 평택의 어느 족벌 사학에서 일어난 폭력 아닌 21세기에 ‘이건 뭥미?’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게 2010년 현재, 대한민국 사학의 현실이다. 정도의 문제일 뿐 이 땅의 사학이라면 그런 일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말이다. 경기도 평택의 어느 고등학교에서 일어난 교장의 ‘교사 폭행’ 이야기다. 언론들은 저마다 이를 ‘교사 체벌’이라고 전하고 있지만, 이는 그리 온당한 표현이 아니다. 교장이 교사들에게 회초리를 휘두른 행위는 ‘체벌’이 아니라 ‘폭력’이다. 언론이 이 사건을 그렇게 받아쓰고 있는 건 은연중에 ‘교장은 교사를 벌할 수 있다’라는 우리 사회의 인식을 드러내서인지도 모른다. 실제 학교 관리자인 교장이 교사에 대한 상벌권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체벌’의 형식이 아니라는 것은 이 현.. 2022. 9. 19.
법은 ‘헌법기관’도 비켜 가지 않는다 전교조, 소속 교사 명단 ‘불법 공개’한 조전혁 의원에게 ‘이행강제금’ 집행 조전혁 세비에 대한 채권압류와 추심명령 결정 그예 조전혁 의원은 월급을 압류당할 지경에 이르렀다. 전교조가 소속 교사 명단을 공개한 조 의원에게 ‘인천지법의 조 의원 세비에 대한 채권압류 및 추심명령 결정’에 따라 이행강제금 1억4500만 원을 집행할 계획이라고 밝힌 것이다. 한나라당 조전혁(51·인천 남동) 의원은 지난 4월 전교조에 가입한 교사들의 명단을 자신의 누리집에 공개했다. 일찍이 자유주의교육운동연합이라는 단체의 상임대표를 지낸 이답게 그는 명백히 ‘불법’이지만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교육계의 공적(公敵)’인 전교조 교사들의 명단 공개를 감행한 것이다. 이에 전교조는 서울남부지법에 명단 공개 금지 가처분신청을 냈.. 2022. 9. 15.
교사, 학교를 떠나다 명퇴로 학교를 떠나는 교사들 그저께 교장 선생이 정년으로 학교를 떠났다. 교장 퇴임은 전입하고 두 번째다. 이태 전의 전임 교장은 명예퇴직했다. 초임 시절의 두 학교를 빼면 여섯 군데 학교에서 연례 행사처럼 교장의 퇴임이 있었다. 한 학교에서 거푸 교장이 퇴임하는 경우는 여기까지 모두 세 곳이다. “가는 학교마다 교장을 퇴임시킨다”라고 농을 할 만하다. 그러나 50대 중반쯤에 교장이 되면 4년 임기를 연임하기가 쉽지 않으니, 학교마다 3~4년에 한 번씩 교장이 퇴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다. 학교장의 ‘정년 퇴임식’ 전후 요즘은 예전과 달리 공식 퇴임식을 갖지 않고 떠나는 이들이 많다. 전임 교장도 약식으로 행사를 치렀고, 그 앞뒤 평교사 몇 분의 정년과 명예 퇴임은 공식 행사조차 갖지 .. 2022. 9. 1.
첫 투표를 하게 될 제자들에게 2010년 지방선거를 치를 제자들에게 딸들아, 너희들과 만난 건 2007년 3월, 2학년 교실에서였다. 열여덟 큰아기였던 너희들에게 나는 문학과 작문을 가르쳤지. 갓 전입한 내게 너희들은 아주 속 깊은 아이처럼 조금씩 따뜻하게 곁을 내어 주었고, 마음으로 나를 믿어 주었었다. 우리는 4월에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다녀왔고 5월에는 체육대회를 치르고 다큐멘터리 영화 ‘우리 학교’를 같이 보았다. 결국엔 내가 지은 셈이 되었지만, 고추 농사를 함께 시작했고, 7월엔 학교 축제를 함께 치렀다. 나는 그 전해 연말에 문을 연 블로그에다 너희들과의 일상을 드문드문 기록하기도 했다. ▶ 2007년 4월, 제주도 수학여행 ▶ 20007년 우리 반 고추 농사 ▶ 2007, 다큐영화 관람 ▶ 2007년 7월, 학교 축제 ▶.. 2022. 5. 30.
‘전교조 탈퇴’, 이제 ‘용기 내는 일’만 남았다? ‘교학연’이라는 요상한 단체에서 온 괴편지 전교조 결성 22주년 기념일이 다가오는데, 아닌 ‘괴편지’가 학교로 날아들었다. 글쎄, ‘괴편지’라니까 은근히 가십의 냄새마저 묻어나는데, 기실은 가십거리도 못 된다. 사람들 사이의 전통적인 소통 수단인 ‘편지’ 앞에다 하필이면 ‘괴(怪)’자를 붙이는 까닭은 ‘낯선 사람, 낯선 단체로부터 온 편지’인데다가 그 내용이 또한 ‘완전(!) 황당’ 그 자체기 때문이다. 오늘 배달된 ‘괴편지’ 아마 몇 해 전, 전교조 조합원 교사 명단 공개 때의 자료를 바탕으로 보낸 편지 같다. 편지를 받은 이는 이미 다른 학교로 이동한 교사를 포함, 전교조 조합원 교사들이다. ‘스팸 이메일’은 들어봤는데 봉투에다 넣어서 보낸, 격식 갖춘 ‘스팸 편지’는 또 난생 처음이다. 편지의 제목.. 2022. 5. 24.
‘사태’와 ‘항쟁’, 혹은 ‘나이스’와 ‘네이스(NEIS)’ 특정한 사건과 대상 지칭 어휘에 숨은 이데올로기 말은 의사소통의 수단이지만, 말하는 이의 의식을 가감 없이 드러내기도 한다. 특정한 어휘가 일정한 세계관과 이데올로기를 드러내고 있다는 것은 두루 알려진 바다. 여전히 이 땅에서 갈등 관계인 ‘근로’와 ‘노동’은 그 좋은 실례라 할 수 있겠다. ‘광주항쟁’을 ‘광주사태’라 부른 작가 황석영의 발언이 논란이 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현 정부를 ‘중도’라고 규정하며 거기 동참하겠다는 그의 발언 앞에서 대중들은 곤혹스럽다. ‘예언자적 기품’은 고사하고 얼치기 로맨티시스트로 부르기조차 어려운 어처구니없는 그의 현실 인식 때문이다. 황석영의 ‘광주사태’ 발언은 뜻밖이다. 무엇보다 그는 광주의 진실을 처음으로 세상에 널리 알린 보고서 의 저자였던 까닭이다. 당연히 사.. 2022. 5. 20.
자랑스럽구나, 아이들과 함께한 그 ‘세월’ 전교조에서 25년 경력으로 상을 받다 교직에 들어온 이래 처음으로 상을 받았다. 이른바 ‘스승의 날’을 기념하여 주는 관제의 상, 교육감상이나 장관상 따위와는 다른 상이다. 1986년 5월 10일 교육 민주화 선언을 기념하여 내가 가입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에서 주는 ‘교육공로상’이다. 전교조 위원장이 주는 교육공로상 ‘교육공로’라니까 무슨 대단한 업적을 생각할지 모르나, 이 상이 가리키는 공로는 ‘오래 교단을 지켜 온’ 것이다. 수상 자격은 오직 교직 경력 25년쯤의 연공(年功)이다. ‘관’과는 달리 전교조에서는 해직 기간을 경력에 넣기 때문에 교내 연령 서열(?)은 6위지만 호봉서열은 20위쯤에 그치는 내게도 이 상이 내려온 것이다. 앞에서 밝혔듯 이건 내가 교직에서 받는 첫 번째 상이다. 나는.. 2022. 5. 15.
정년퇴임, 떠나는 이들의 뒷모습을 생각한다 이 땅에서 평교사로 살아가기 3월 인사발령에서 평교사에서 교감으로 승진 발령을 받은 이들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다. 거기 아무런 관심이 없는 탓이다. 누가 교감이 되었건, 누가 교장이 되건 그건 나와는 무관한 일이다.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고 주변의 동료들도 비슷한 이들로 넘치니 그런 쪽의 뉴스엔 캄캄하기만 하다. 교직에 들어온 지 햇수로는 25년째다. 통상의 경우라면 승진이 남의 얘기가 아닐 터이다. 그러나 설사 거기 뜻을 둔다고 해도 까먹은 세월 덕분에 후배들보다 호봉이 낮은 터라 언감생심이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승진과는 무관한 삶을 살아온 것이다. 몇 해 전이다. 부산에서 처가 행사가 있어 갔더니 처사촌 몇이 나를 보더니 반색하고 묻는다. 자형, 이제 교감 될 때 된 것 아닌가요? 어이가 없어서 .. 2022. 3. 18.
그래도 봄…, 3월의 학교 풍경 2008학년도의 시작 그래도 봄이다. 어느 날부터 복도와 게시판에 하나둘 동아리 회원 모집 포스터가 붙기 시작한 것이다. 1년 365일, 책에다 코를 박고 사는 아이들인데도 학년 초에는 1학년 새내기를 회원으로 모셔오느라(?) 용을 쓴다. 학교에서 공식적으로 허용하는 동아리 소개 시간이 따로 있지만, 복도에다 포스터를 붙이고 아는 친구를 통해서 좋은 회원을 많이 확보하기 위한 경쟁은 뜨겁기만 하다. 자세한 내용 없이 동아리 이름을 전면에 내세운 동아리는 어차피 동아리 소개 시간에 자세한 걸 다룰 터이니 새내기들에게 이름으로 어필해 보자는 전략을 선택한 듯하다. 좋은 후배를 모시기 위한 각 동아리의 광고 문안(카피)도 현란하다. 이웃의 남자 고등학교들과의 연합활동을 강조하면서 이성에 목말라하는 여학생들의 .. 2022. 3.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