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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2019/0345

진달래 화전과 평양소주 진달래 화전을 안주 삼아 평양소주를 마시다 봄이 무르익기 전에 개울가에 가서 버들피리를 만들어 보고 싶었다. 궁싯거리다가 오후에 길을 나섰다. 시 외곽의 시골 쪽으로 나가다 우연히 근처에서 나무로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는 선배 교사들을 만났다. 강권을 뿌리치지 못하여 이분들의 집으로 갔다. 한 이태쯤 되었는가, 이제 어깨를 나란히 한 집 세 채가 주변 풍경 속에 무던하게 녹아 있었다. 처마 밑에 키 큰 진달래가 피어 있었는데, 안주인 두 분이 나란히 서서 그 꽃잎을 따기 시작했다. 화전(花煎)을 부치겠다고 한다. “화전이라……, 부쳐보셨던가요?” “아뇨, 말만 들었지 부쳐보진 못했어요.” 그렇다. 그러고 보니 나도 말만 들었지 그걸 직접 먹어 본 기억이 없다. 어릴 적에 어머니와 누님들에게서 화전놀이 .. 2019. 3. 31.
지금 우린 서로에게 잘 ‘길들고’ 있다 3월, 아이들과 나는 서로에게 ‘적응’하고 있다 느지막하게 찾아온 봄, 꽃샘추위가 계속 중이어서. 세탁소에 보내려던 겨울 양복을 다시 꺼내 입었다. 다음 주면 3월도 끝. 내일 수학여행을 떠난다. 세 해째 맞는 제주도 여행이다. 아이들은 벌써 설레고 있는 눈치다. 아이들 탓인지, 공연히 나도 마음이 좀 달라지는 것 같다. 편안한 봄, 아이들도 수업도… 예년과 다르지 않은 봄이고 3월이다. 그러나 올봄이 나는 무척 편안하다. 올해를 마지막 해로 삼았음인가, 나는 마치 티끌처럼 가볍다. 새로 만난 우리 반 서른세 명의 아이를 포함한 이백여 명의 큰아기들은 물론이거니와 그들과 함께하는 수업도 편안하다. 2월에 담임이 확정되었을 때부터 마음이 예년 같지 않았다. 어떤 아이들일지, 처음 교단에 섰을 때와는 또 다.. 2019. 3. 31.
조앤 바에즈((Joan Baez), 그 삶과 노래 미국의 가수, 인권 운동가이며 반전 평화 운동가 조앤 바에즈 나는 음악과는 무관하게 살아온 사람이다. 소싯적에 나훈아나 송창식, 양희은과 김추자 같은 대중가수의 노래를 즐겨 불렀다고 해서 그런 사실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그나마 대중가요가 손쉬웠고 클래식 쪽에는 맹탕이었다. 80년대 후반부터 4, 5년 동안 이른바 ‘민중가요’에 한눈은 판 건 시대 탓이라고 해야 한다. 지금도 나는 흥이 나면 쌍팔년도의 유행가를 흥얼거리기는 한다. 박자 감각은 떨어지지만, 노래방에 가면 몇 곡의 노래는 부를 수 있을 만큼 노래 ‘흉내’는 내는 편이다. 그러나 삶 자체가 그리 건조했던가, 나는 음악과는 ‘무관’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난생처음 산 카세트테이프 ‘솔밭 사이로 강물은 흐르고’ 컴퓨터 스피커를 꺼 놓고 쓰.. 2019. 3. 31.
작별, 그렇게 아이들은 여물어간다 아이들과 헤어질 때가 되었다 지난 12일은 졸업식이었다. 꽃다발과 사진기 조명 세례를 받으면서 아이들은 행복해 보였다. 열아홉 살 여고생의 신분을 벗고 예비 대학생, 방년 스무 살로 진입하는 아이들을 나는 마음속으로 축복했다. 아이들은 저마다 엷게 화장을 하고 있었는데 선입견 탓일까, 그 화장기는 마치 그들이 헤쳐나갈 미래처럼 불안해 보였다. 나는 지난해 우리 반이었던 아이들을 찾아 일일이 손을 잡고 축하해 주었다. 자신이 꿈꾸어 온 대로 진학하게 된 아이는 몇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모두들 자신의 선택을 받아들이고 있음이 분명했다. 수능을 치르고 나서 눈물을 쏟았던 아이들의 얼굴에도 함박꽃 같은 웃음이 가득했으니. 작별의 때가 왔다 이튿날은 종업식이었다. 나는 일찌감치 마음먹고 있었던 대로 정장을 하고.. 2019. 3. 30.
박기정의 만화 <도전자>, 그 서사의 미학 만화 이야기-박기정의 만화라면 할 말이 적지 않다. 시골에서 자랐으니 당연히 만화방은 구경도 하지 못했다. 그런데 대구에서 일하던 작은누나가 어느 날 누군가의 가게를 인수했다면서 수천 권의 만화책을 싣고 고향으로 돌아온 것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였던 것 같다. 시골 초등학교의 가난한 도서실 책들을 거지반 읽어치운 책벌레였던 나는 그러고 한 몇 달을 만화책에 푹 파묻혀 지냈다. 시골 아이를 만화의 세계로 안내해 준 빛나는 작가들의 이름은 박기정, 김종래, 이근철, 산호, 손의성 등이었다. 특히 박기정의 만화 와 의 감동을 잊을 수 없는데 나는 박기정의 만화가 기본적으로 소설의 미학을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만화와 멀어지게 된 것은 중학교부터 무협 소설에 빠지게 되면서부터다. 내 상상력은 그림을 제거한 텍.. 2019. 3. 30.
지난해의 네 잎 클로버 한 아이가 건네 준 네잎 클로버 2학기, 문학 시간도 막바지다. 희곡 단원에 들어가 교과서를 펴는데, 거기 누르스름한 종이쪽 같은 게 끼어 있다. 네 잎 클로버다. 아, 마치 잊었던 옛사랑을 떠올리는 것처럼 나는 아득해진다. 작년 이맘때였던가, 아니다. 훨씬 이른 때였으리라. 어떤 아이가 내게 전해준 것이다. 어디였나. 수업시간이었는지, 아니면 교무실에서였는지, 아니면 교정을 거닐 때였는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 네 잎 클로버는 누군가로부터 전해 받은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누구였는지도 기억하지 못한다. 나는 무심코 그걸 받아 교과서에다 끼웠을 것이다. 무심코. 그 아이는 어땠을까. 네 잎 클로버를 따서 들고 오다가 우연히 마주친 내게 내밀었던 걸까. 아니면 구태여 내게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던 아이.. 2019. 3. 30.
임청각 - 석주 일가의 사위·며느리들 노블레스 오블리주, 석주 이상룡 일가의 사위와 며느리 오늘 광복절 기념식 경축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안동의 임청각(臨淸閣)과 석주(石州) 이상룡 선생 일가를 언급하면서 임청각에 사람들이 관심이 쏠리고 있다. 문 대통령은 경축사에서 임청각을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임청각은 일제강점기 전 가산을 처분하고 만주로 망명해 신흥무관학교를 세우고, 무장 독립운동의 토대를 만든 석주 이상룡 선생의 본가로 무려 아홉 분의 독립투사를 배출한 독립운동의 산실이고, 대한민국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상징하는 공간이다.” “그에 대한 보복으로 일제는 그 집을 관통하도록 철도를 놓았다. 아흔아홉 칸 대저택 임청각은 지금도 반 토막이 난 모습 그대로다. 이상룡 선생의 손자, 손녀는 해방 후 대한민국에서 고아원 생활을 하기도 했다. .. 2019. 3. 28.
30년, 제자들과 함께 늙어가기 30년째 교유를 잇고 있는 제자들과 함께 늙어가기 지난해 2월 25일, 동료 교사들이 마련해 준 ‘퇴임 모임’에 인근에 사는 제자들 여덟 명이 함께 해 주었다. 모임을 끝내고 난 뒤에도 우리는 자리를 옮겨 얼마간 시간을 더 나누고 헤어졌었다. 그리고 1년이 훌쩍 지나갔다. [관련 글 : 걸어온 길, 걸어갈 길] 1988년, 두 번째 학교에서 만난 아이들이었다. 함께 문학동아리를 만들어 교외 시화전을 치르고, 문집을 펴내면서 인연을 맺었다. 거기서 이태를 채우지 못하고 해직되었는데, 지금까지 우리는 교유를 이어오고 있다. 좀 쓸쓸하게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우리를 더 묶었는지도 모른다. [관련 글 : 좋은 이웃, 혹은 제자들(1)], [교사의 ‘격려’와 ‘질책’ 사이] 함께한 세월, 29년 해직 5년.. 2019. 3. 28.
‘비목(碑木)’과 ‘잠들지 않는 남도’ 사이 제주 4.3추념식에서 부르는 ‘노래’ 시비에 부쳐 참 어려운 세상이다. 국가추념일 의식에 부를 노래를 두고 해마다 논란이 되풀이되고 있으니 말이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문제로 정부 여당과 5·18재단, 지역민들이 부딪치더니 이번엔 제주 4·3 추념식에서다. 보도에 따르면 올 4·3 추념식에서는 현지 주민들이 늘 불러왔던 ‘잠들지 않는 남도’ 대신 ‘비목(碑木)’이 합창 되면서 논란이 재연되었다고 한다. 4·3이 국가추념일로 지정된 지난해에 난데없이 G20 주제가였던 ‘아름다운 나라’가 연주된 데 이어 두 번째다. 4·3 추념식에 웬 ‘비목’과 ‘그리운 마음’? 그나마 지난해 논란을 불렀던 ‘아름다운 나라’가 불리는 대신 전국 공모를 통해 4·3의 노래로 선정된.. 2019. 3. 25.
교단 31년, 아이들과 함께 성장한 시간들 학교를 떠나며 ② 교단 31년, 아이들과 함께 성장한 시간들 2015학년도 종업식 때 퇴임 행사를 해야 하지 않겠냐는 학교 쪽의 제의를 저는 정중히 사양했습니다. 아이들과는 수업을 마치며, 교직원들에겐 송별회 때 작별인사를 하면 되리라고 여겼으니까요. 정년도 아니면서 공연히 아이들과 동료들 앞에 수선(?)을 피울 까닭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아이들에게 작별인사를 화요일에는 3학년, 수요일에는 2학년 아이들에게 작별인사를 했습니다. 2월 28일 자로 학교를 떠나게 되어 작별인사를 해야겠다고 하니까, 아이들은 짧은 탄성을 지르며 자세를 바로 하고 잠깐 긴장하는 듯했습니다. “고맙다. 지난 1년간 공부하면서 너희들은 나를 신뢰해 주었고, 어떤 상황에서도 선을 지키며 예의를 잃지 않았다. 나는 여러분과 교.. 2019. 3. 25.
걸어온 길, 걸어갈 길 학교를 떠나며 ② 후배, 제자들과 함께한 퇴임 모임 후배 교사들이 마련해 준 25일의 퇴임 모임에 나는 10분쯤 지각했다. 모임 장소인 식당 2층에 올라 실내로 들어서는데 방안 가득 미리 와 있던 동료들이 일제히 환영의 인사를 건네 오는 바람에 나는 잠깐 당황했다. 그런 식의 환대에 별로 익숙하지 않았던 까닭이다. 걸어온 길, 걸어갈 길… 모임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걸 몰랐던 것은 아니지만, 뚜렷하게 그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 창가에 작은 펼침막이 붙어 있는 걸 확인한 것은 한참 뒤다. ‘당당히 걸어오신 길, 새롭게 시작하는 길’이라는 문구 아래 내 이름이 씌어 있었다. 잠깐 앉았다가 나는 자리를 돌면서 일일이 인사를 나누었다. 후배 교사들이 스물 서넛, 인근에 사는 제자들이 여덟 명이 와 주었다. 따로.. 2019. 3. 24.
너희들도 때론 내게 ‘스승’이어라 스승의 날, 아이들로부터 축하케이크를 두 번 받다 아이들에게 오래된 교단의 기억들을 얘기한 적이 있다. 20년 전 ‘열등반 담임의 추억’ 말이다. 그러면서 그 녀석들의 이야기를 글로 쓰겠다고 했더니 아이들은 자신들의 얘기도 글로 써 달라고 주문했다. 이 글은 아이들의 주문에 대한 답인 셈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라는 쑥스러움을 무릅쓰는 까닭도 순전히 거기 있으니 독자들께서도 너그러이 용서해 주시면 좋겠다. 교사가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아이들은 교사들을 이성으로 인식할 수 있다. 그래서 젊은 총각 교사와 처녀 선생님들에게 아이들 마음이 끌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반대로 교사들은 의식적으로 아이들을 이성으로 인식하지 않으려 하기 마련이다. 그것은 교육적 필요 때문이면서 한편으로 인간적 자기 통.. 2019. 3.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