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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2019/0237

‘눈록빛’을 아십니까, 우리말 같은 한자어들 이게 우리말 아니라 ‘한자어’라고? 이게 한자였어? 우리말 같은 한자어들 ‘눈록’이란 낱말을 처음 만난 것은 신영복 선생의 서간집 에서였다. 감옥 안에서 새싹을 틔운 마늘, 거기 담긴 봄을 감동적으로 전하는 글이었다. “눈록빛 새싹을 입에 물고 있는 작은 마늘 한 쪽, 거기에 담긴 봄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닙니다. 봄이 아직 담을 못 넘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모르는 새 벌써 우리들의 곁에서 새로운 생명을 키우고 있었던 것입니다.” 눈록빛! 눈과 귀에 선 낱말이었지만 나는 앞뒤 맥락으로 그게 무슨 뜻인지를 넉넉히 새길 수 있었다. 어릴 적 마늘 한 쪽을 물 담은 병 주둥이에 꽂아 두면 틔우던 새싹. 그 연둣빛을 선생은 ‘눈록빛’이라고 표현한 것이었다. 나는 이렇게 멋진 우리말이 있었다는 사실에 적잖이 감동했.. 2019. 2. 28.
1등급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누가 받았나 유관순 열사 훈격 승급 결정에 부쳐 정부는 어제(26일) 유관순 열사의 독립 유공 훈격을 '독립장'(3등급)에서 '대한민국장'(1등급)으로 높이기로 했다고 한다. 독립유공자에 대한 서훈이 공정하지 않아 '3·1운동의 상징 운동가'로서 그의 공적이 저평가되었다는 여론을 반영한 것이다. 서훈의 승급은 2008년 대한민국장으로 승격된 여운형 선생에 이어 두 번째라고 한다. 2005년에 여운형 선생이 추서 받은 건국 공로 훈장은 2등급의 대통령장이었다. 2008년 2월 21일 노무현 대통령이 퇴임 직전에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한 것이다. 그러나 이어진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이 서훈의 승급이 행정적으로 처리되지 않은 듯하다. 국가보훈처의 공훈전자사료관에서 확인해 보면 여전히 여운형은 2005년 대통령장으로 .. 2019. 2. 28.
로자 파크스, 미 의회에 기념되는 최초의 아프리카계 여성 워싱턴 국회의사당에서 로자 파크스의 동상 제막 지난 27일, 미국 워싱턴 국회의사당에서 로자 파크스(Rosa Lee Louise McCauley Parks, 1913~2005)의 동상 제막식이 열렸다. 이로써 미 민권운동의 어머니 로자 파크스는 의회의 스태츄어리 홀(statuary hall)에서 다른 유명 인사들과 함께 기념되는 최초의 아프리카계 여성이 되었다. [☞관련 글 : 로자 파크스, 행동과 참여] ‘의회의 승인과 기금’으로 만든 동상 오바마 대통령이 “체구는 작았지만 용기는 대단했다”고 기린 이 흑인 여성의 동상은 ‘1870년대 이후에 최초로 의회의 승인과 기금으로 만들어진’ 동상이라고 외신은 전한다. 이 동상의 제작은 2005년 가을 로자의 추도식에서 민주당 하원의장 낸시 펠로시의 제안으로부터.. 2019. 2. 27.
뉴라이트와 조중동에 프랑스를 가르칩니다 [서평] 이용우 지음 (역사비평사, 2008) 새 정부 들면서 시작된 역사 인식의 퇴행은 예순세 돌 광복절을 지나면서 그 절정에 이른 듯하다. 이 대통령은 “언제까지 과거에 얽매여 미래로 가는 길을 늦출 수는 없다(3·1절 기념사)”며 “맨날 사과하라고 요구하지 않겠다”고 일본에 대해 너그러운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그 뒤 전개된 여러 상황은 별로 ‘미래지향적 관계’답지 못해 보인다. 일본의 독도 도발에 대해 강경 대응 기조를 유지하고 있지만 적어도 새 정부의 대일 역사 인식은 여전하다는 걸 이름만 광복절이지 사실은 ‘건국절’로 치러진 8·15 행사가 증명해 주었다. 1948년 8월 15일의 정부 수립을 ‘건국’으로 미화하고 싶어 하는 뉴라이트와 조중동 등 보수언론의 성화에 못 이기는 척했지만, 정부의 .. 2019. 2. 26.
로자 파크스, 행동과 참여 미국 의회가 ‘현대 민권운동의 어머니’라고 기린 로자 파크스 두 개의 우연, 안철수와 로자 파크스 구글의 기념일 로고를 검색하다가 ‘로자 파크스’를 만났다. 2010년 12월 1일자 구글 로고는 그녀의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 55주년 기념’ 로고였던 것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오늘자 뉴스에서 로자 파크스의 이름이 등장한다.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를 방문해 전달한 지지 서한에서 안철수 교수는 그녀를 인용했던 것이다. 안철수 교수는 예의 서한에서 56년 전, 미국에서 흑백 분리의 악법에 따를 것을 거부한 한 흑인여성의 작은 ‘행동’을 떠올린다. 그리고 그녀의 행동이 역사적 변화를 이끌어 낸 힘이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사람들의 참여가 그날의 의미를 바꿔 놓았듯 ‘선거는 그런 참여의 상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 2019. 2. 26.
토플 만점 여중생 반대편엔 ‘루저’가 우글 ‘특수 사례’를 ‘보편적 사례’로 포장하는 언론 보도 “‘유학 無 사교육 無’ 여중 1년생 토플 만점” 일요일 오전 인터넷에 접속하자 포털 대문에 걸린 기사 제목이다. 늘 이런 게 뉴스가 되는 세상이긴 하지만 씁쓸한 기분을 어쩌지 못한다. 여중 1학년생이 미국 교육평가원(ETS)이 주관한 지난달 24일 iBT(internet-Based Toefl) 토플시험에서 120점 만점을 받았다는 기사다. 나는 토플에 대해서 아는 게 전혀 없다. 그런 시험이 있다는 정도만 알 뿐, 그 내용은 말할 것도 없고, 그런 시험에 응시해 본 적이 없으니 말이다. 그러나 평균 78점(세계 평균 79점)이라는 한국인의 토플성적을 고려하면 어린 학생이 이룬 성과가 얼마나 ‘대단하고 장한 일’인가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토플 .. 2019. 2. 26.
31년…, 뒤돌아보지 않고 떠납니다 학교를 떠나며 ① 오는 2월 마지막 날짜로 저는 지난 31년의 교단생활을 마감하게 됩니다. 어떤 형식의 끝이든 감회가 없을 수 없지요. 지난해 세밑에 쓴 기사(서른넷 풋내기였던 나, 학교에서 잘리다)에 저는 떠나기 전에 정리가 필요할 듯하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러나 막상 학교에 머물 날이 한 달 남짓밖에 남지 않았는데도 저는 여전히 궁싯거리고만 있습니다. 정리하고 마무리하자고 자신에게 되뇌곤 하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어서지요. 무엇을 정리하고 무엇을 마무리해야 하는지가 다만 어지러울 뿐입니다. 31년(1984.3.1.~2016.2.28.)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우리의 셈법입니다. 1989년 9월부터 1994년 2월까지의 공백, 4년 반은 기실 우리에겐 ‘잃어버린 시간’이기 때문이지요.. 2019. 2. 25.
주요한, ‘야스쿠니의 신’이 되도록 천황을 위해 죽으라 ‘천황을 위해 죽으라’고 권유한 ‘불놀이’의 시인 주요한 조선총독부가 ‘조선민사령’을 개정한 것은 1939년이고, 이에 따라 조선에서도 일본식 씨명제(氏名制)를 따르도록 명령한 것은 1940년이었다. 이른바 ‘창씨개명’은 거칠게 정리하면 조선 사람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일본인이 되라는 요구였다고 할 수 있다. 대부분 조선인이 이 정책에 반대하였지만 이에 적극적으로 호응한 친일파도 적지 않았다. 우리나라 최초의 자유시 「불놀이」의 시인 주요한(朱耀翰·松村紘一, 1900~1979)도 여기 당당히 이름을 올린다. 총독부의 내선일체 체제에 적극적으로 호응하여 일본어 시집 『손에 손을(手に手を)』(1943)까지 낼 정도의 극렬 친일파 주요한은 기꺼이 황국신민의 은혜에 감읍해 마지않는다. ‘마쓰무라 고이치(.. 2019. 2. 24.
‘뜨물’ 숭늉을 마시며 쌀 뜨물로 끓인 숭늉 겨울 들면서 가끔 아내가 식후에 쌀뜨물을 숭늉 대신 내놓기 시작했다. 펄펄 끓인 쌀뜨물은 불어가면서 천천히 마셔도 좋고, 거기 밥을 조금 말아서 먹는 것도 괜찮다. 세월이 세월이니만큼 무어 그리 각별한 맛이 있을 턱은 없다. 그러나 뜨겁게 김이 오르는 쌀뜨물을 마시고 있노라면 어린 시절의 기억을 고스란히 떠올려주곤 해서 아내와 나는 그 시절을 애틋하게 추억하기도 한다. ‘뜨물 숭늉’의 유년 어릴 적에 식후에 숭늉으로 먹곤 했던 뜨물 숭늉은 고작 두세 식구의 밥을 지어내는 압력밥솥에서 끓여내는 요즘 뜨물과는 비교할 수 없다. 윤이 나는 까만 무쇠솥에 불을 지펴서 짓는 밥의 밥맛도 밥맛이려니와 밥을 푼 뒤에 다시 뜨물을 붓고 아궁이에 조금 더 불을 지펴서 끓여내는 뜨물 숭늉을 후후 불어.. 2019. 2. 23.
매화(梅花), 서둘러 오는 봄의 전령 동네 야산에서 만난 매화 오늘 오전에 올해 들어 처음으로 인근 야산에서 매화를 만났다. 남도에서는 진작 핀 꽃이지만, 아직도 봄은 먼 경북 북부지역에선 ‘아직’이다. 야산 비탈길로 오르는 어귀, 오종종하게 서 있던 가느다란 매화나무 몇 그루에 잔뜩 물이 올랐다. 막 윤기가 흐르는 줄기에 다투어 벋은 가지에 꽃망울이 잔뜩 부풀었다. 그러나 아직은 거기까지다. 뿌리에 가까운 쪽에 한두 송이가 힘겹게, 그것도 꽃잎을 7부만 벌리고 있다. 벌은 아직 보이지 않고, 산등성이에서 상기도 한기를 품은 바람이 미끄러져 내려왔다. 어이없게도 매화(梅花)를 나는 화투 그림을 통해서 먼저 알았다. 거의 직각으로 꺾인 가지 위에 꾀꼬리가 앉아 있는 2월 ‘매조(梅鳥)’로 말이다. 눈썰미가 없었던가, 아니면 주변에 매화가 드물.. 2019. 2. 23.
운명, 혹은 패배에 대하여 운명, 혹은 패배, 그리고 분노 ‘땀’이 성공의 열쇠다? “천재는 1%의 영감, 99%의 ‘땀’으로 이루어진다”는 에디슨의 발언은 숱한, ‘성공’과 ‘출세’를 위해 질주하고 있는 이들과 그들이 지켜 온 신념을 끊임없이 고무해 왔다. 그리고 한 사회나 시대를 규정짓고 있는 제도나 그 모순과는 무관하게 자기 목표를 이룬 소수의 ‘입지전적 인물’들에 의해 그것이 진실이거나 진실에 가까운 것으로 입증되어 온 것으로 믿어지고 있다. 에디슨의 발언은, 액면 그대로가 아니라 그 함의(含意)로 이해하는 게 옳다는 지적은 물론 당연하다. 그러나 너무 자주, 세상은 성공과 승리의 이면에 존재하는 땀의 역할만을 과장해 바라보며, 모든 실패의 원인을 ‘나태와 태만’으로 규정하면서, 그러한 패배를 예비하고 있는 사회적·제도적 .. 2019. 2. 23.
묵은 책을 버리며 미련도 함께 버리다 서가를 정리하면서 마침내(!) 책을 좀 ‘버리기’로 했다. 크고 작은 서가 여섯 개가 가득 차게 된 게 꽤 오래전이다. 새로 서가를 들일 공간도 없고 해서 칸과 칸 사이의 여백에다 책을 뉘어서 넣거나, 크기가 작은 책은 두 겹으로 꽂는 등으로 버텨왔다. 삼십 년이 넘게 모아온 책이지만 어차피 장서가(藏書家) 축에 들 만한 규모도 아니고, 그걸 추구한 적도 없다. 그러나 조그만 책꽂이에다 꽂으며 불려온 책이 하나씩 들이는 서가를 채울 만큼 늘어나면서 그걸 바라보는 마음이 넉넉해졌던 것만큼은 부인하기 어렵다. 책 읽기의 강박 30년, 책을 버리다 대학 시절에야 워낙 궁박한 처지여서 책도 마음대로 한 권 못 샀고 학교 도서관을 이용하곤 했다. 매달 책을 사서 읽게 된 것은 초임 발령을 받아 아이들을 가르치게 .. 2019. 2.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