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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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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숲이 사라진 한반도, 상상하고 싶지 않다 이런저런 일로 일주일 넘게 산을 통 찾지 못했다. 강원도를 다녀와 하루를 쉬고, 다음 날 산에 올랐다. 산 중턱에 짓고 있는 전원주택을 지나면 바로 등산로다. 그 어귀에 들어서다가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꽤 굵직한 소나무 한 그루가 쓰러져 길을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나무의 빨간 띠, 노란 딱지 뒤늦게 온 태풍은 피해 갔다는데 웬 나무가 다 쓰러졌나 싶었는데, 나무 몸통에 붉은 페인트 자국이 선명하고 그 위에 노란 딱지가 붙어 있다. 노란 딱지는 ‘소나무재선충병 방제사업’을 알리는 표지였다. 언덕 위에도 몇 그루가 같은 빨간 띠와 노란 딱지를 달고 있었다. 수십 년을 묵었을 나무인데도 언덕 아래로 벋은 나뭇가지는 모두 벌겋게 말라 죽어 있었다. 아마 소나무재선충에 감염된 나무라는 표지인 듯했다.. 2021. 10. 22.
선물 ‘선물’ 이야기 아침에 미역국을 먹었다. 일요일인데도 아내가 부산스럽게 움직이더니 더덕구이와 갈치자반이 상에 올랐다. 잠이 덜 깬 딸애가 밥상머리에 앉으며 축하 인사를 건넸고, 곧 서울에서 아들 녀석의 전화가 걸려 왔다. 이른바 ‘귀가 빠진 날’인 것이다. 선물은 생략이다. 아내가 선물 사러 나가자고 여러 번 권했지만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시험 준비 중인 딸애는 따로 선물을 준비할 여유가 없었던 듯했고, 아들애는 전화로 제 어미에게 대신 선물을 준비하라 이른 모양인데, 내가 선물 얘기를 잘라버린 것이다. 나나 아내는 여전히 선물 문화에는 익숙하지 않다. 지난 5월(어버이날)에는 딸애가 카네이션 바구니를, 군에 있던 아들 녀석이 ‘군사우편’을 보내왔었다. 오후에는 외출에서 돌아온 딸애가 선물 상자 하나.. 2021. 10. 21.
[눈요기] 도토리묵 별식 좀 들어 보시려오? ‘꿀밤(도토리)묵’ 별식 지난번에 주워 온 꿀밤으로 묵을 쑤었다. 물론 내가 아니고 아내가 했다. 나는 딸애와 함께 껍질을 까는 걸 조금 거들었을 뿐이다. 나는 밤 깎는 가위와 니퍼까지 동원해서 도토리 껍질을 벗겼다. 그리고 한 이틀쯤 지나자, 아내가 썩 훌륭하게 묵이 완성되었다면서 네모난 플라스틱 그릇에 담긴 묵을 보여주었다. 어라, 그런데 그 묵의 빛깔이 예전에 보던 게 아니었다. 나는 예전처럼 짙은 암갈색의 묵을 떠올리고 있었는데 아내가 쑨 묵은 밝은 갈색이었던 것이다. 머리를 갸웃하는 내 궁금증을 아내가 분질러 놓았다. “빛깔이 왜 이래?” “왜 그렇긴……. 껍질 깠잖아요.” “???” 아내의 설명은 심드렁하다. 대체로 도토리묵을 쑤면서 껍질을 까지 않고 껍질째로 간다. 어차피 거르는 과정을 거치.. 2021. 10. 21.
‘<조선일보> 반대 마라톤대회(조반마)’ 지각 참관기 제8회 반대 옥천마라톤대회 앞서 밝혔듯 ‘조선일보 반대 마라톤대회(조반마)’는 처음이다. 아니 마라톤대회에 참가하는 것조차 처음이다. 마침 집에 들렀던 아들 녀석과 전날에야 동행하겠다고 나선 딸애와 함께였다. 물론 이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나처럼 ‘조반마’에 대한 흥미를 갖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아는 사람도 없이 혼자서 대회에 참석하는 게 어정쩡하리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장거리 운전에 대한 부담을 이야기하면서 아들에게 동행을 청했고, 제 동생과 함께 딸애도 따라나선 것이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아이들에게 맡기기로 하고 가는 길 운전은 내가 했다. 아뿔싸, 지각이다 예천, 상주를 거쳐 옥천으로 가는 길은 십수 년 전부터 익숙한 길이었다. 그러나 아는 길이라 너무 만만하게 보았던가. 우리는 .. 2021. 10. 19.
[2017 텃밭일기 6] 수확에 바빠 ‘까치밥’을 잊었다 묵은 밭의 고추를 뽑고 배추와 무를 심은 지 한 달이 지났다. 밭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감나무 꼭대기까지 타고 오른 호박 이야기로 헛헛한 기분을 달랬었다. [관련 글 : 따, 말아? 감나무 꼭대기의 호박] 일주일쯤 뒤에는 새 밭의 고추도 뽑았다. 탄저를 피한 푸른 고추 몇 줌을 건지는 걸로 우리 고추 농사는 마무리되었다. 틈틈이 따낸 고추는 아내가 노심초사 끝에 햇볕과 건조기로 말려서 방앗간에 가서 빻아오기 여러 번, 얼추 열 근에 가까운 양이 되었다. 고춧가루의 고운 빛깔에 아내는 무척 흡족해했고 진딧물과 탄저에도 그쯤이라도 건진 걸 나 역시 대견하게 여겼다. 추석을 쇠고 차일피일하다 보니 열흘이 훌쩍 지났다. 명절 끝에 고구마를 캐자고 했는데 그게 자꾸 미루어진 것이었다. 고구마를 캐고, 못 가본 새에.. 2021. 10. 19.
연암 박지원의 ‘열하 투어’는 반쪽짜리였다? [서평] 김태빈의 북경 한국국제학교에 파견되어 세 해 동안 현지 한국 학생들에게 국어를 가르치고 돌아온 현직 고교 교사가 책 한 권을 냈다. 라는 다소 기다란 제목의 이 책은 부제가 ‘물음표와 느낌표로 떠나는 열하일기’다. ‘연암’에다가 ‘열하일기’와 ‘답사’가 나왔으니 이 책의 얼개는 눈치채고도 남겠다. 지은이 김태빈 교사는 2013년부터 북경에서 머물면서 ‘조선 후기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연암과 다산, 추사를 공부하며 글을 써온 이다. 그의 블로그 ‘김태빈의 공부’에는 그 ‘공부’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특히 그는 연암의 ‘길 위의 삶’에 주목해 연행의 노정과 열하, 북경의 관련 유적지를 여러 차례 답사했다. 2014년에는 자기 반 아이들과 함께 연암의 연행 노정 전체를 답사했다. 북경에서 산.. 2021. 10. 18.
안상학 사화집 <시의 꽃말을 읽다> [서평] 안상학 사화집 안동의 안상학 시인이 책을 냈다. 지난 9월 중순께 지역에서 출판기념 북 콘서트를 연다는 시인의 전갈을 받았지만 나는 다른 일 때문에 거기 참석하지 못했다. 북 콘서트는 책에 시가 실린 시인 몇이 손수 자기 시를 낭독하고 저자와 대화를 나누는 등의 행사였는데 보지 않아도 지역의 지인들로 성황을 이루었을 것이었다. 깜빡 잊고 있었는데 한가위 연휴가 끝나고 학교에서 시인이 서명한 책을 등기로 받았다. 마땅히 먼저 사서 읽고 뒤에 서명을 받아야 하는데 편하게 앉은자리에서 증정본을 받게 된 것이다. 시인은 1988년 신춘문예로 등단해 첫 시집 (1991)를 냈다. 그리고 10년 후부터는 (2002), 오래된 엽서(2003), (2008)을 차례로 냈고, 지난해에는 다섯 번째 시집 (실천문.. 2021. 10. 17.
‘도토리’ 노략질 이야기 수업 없는 시간에 뒷산 기슭에 무리지어 핀 쑥부쟁이를 찍었다. 후배가 ‘백구자쑥’이라고 한 그 쑥부쟁이다. 보랏빛 쑥부쟁이를 찍었으니 남은 건 흰빛의 구절초[백구(白九)]다. 산이 깊지 않아서일까. 뒷산에는 구절초가 눈에 띄지 않는다. 동료로부터 어느 골짜기에 가면 구절초가 두어 포기 피어 있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선뜻 길을 나서지는 못한다. 그게 내가 원하는 그림이 아닐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근처에 다른 쑥부쟁이가 더 있지 않을까 싶어 길도 없는 숲으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쑥부쟁이를 찾다가 내가 찾은 건 숲에 소복이 떨어진 도토리였다. 꿀밤! 국어사전에서야 ‘도토리’라고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내게 그것은 ‘꿀밤’이다. 간밤에 분 바람 탓일까. 제법 굵직한 크기의 도토리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가으내.. 2021. 10. 16.
‘아름다운 가게’가 반정부 단체라고? 한 여당의원의 황당 주장 최신 뉴스다. ‘아름다운 가게’가 ‘반정부 활동’에 동원되었단다. 지난 10월 13일 국회 정무위원회의 금융감독원 국정감사에서 한, 이사철 한나라당 의원의 주장이다. 주장의 근거는 두 가지다. 아름다운 가게가 촛불집회 등 반정부 불법집회를 한 8개 단체에 자금을 지원한 사실이 있고 이사인 박원순 변호사가 최근 정부를 비판하는 정치활동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사철 의원은 아름다운 가게에 “은행들이 지원하는 것은 부적절하고 앞으로도 있어서는 안 된다”라고 주장했다. 이어서 그는 ‘아름다운 가게에 물품을 기부하거나 가게 장소를 대여하는 등 지원을 하고 있는 금융기관’을 조사해서 제출해 달라고 금감원에 요구했다. 그의 주장의 핵심은 첫째 ‘아름다운 가게는 반정부 활.. 2021. 10. 14.
‘조반마’의 정당성은 <조선>이 입증한다? 조반마(조선일보 반대 마라톤대회) 여덟 번째 ‘조반마’(조선일보 반대 마라톤대회)가 옥천에서 열린다. 원래 조반마는 조춘마(조선일보 춘천 마라톤대회)에 대응해 춘천에서 열리기 시작했다. 춘천에서 열린 조반마에 나는 두어 번인가 참여할 기회가 있긴 했다. 그러나 이런저런 이유로 나는 거기 가지 못했다. 다만 거길 다녀온 지인들로부터 조반마 소식을 간간이 전해 들었을 뿐이다. 최근 몇 년간 나는 아예 ‘조반마’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이번 조반마 소식을 어떤 경로 듣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마침 마라톤을 하는 동료 교사가 거기 참석한다는 얘기를 듣고 나니 은근히 마음이 동하기 시작한다. 누리집에 가 보았다. ‘만원의 기적’ 혹은 언론 주권의 회복 ‘만원의 기적’이라는 포스터가 눈길을 끈다. 그 내용은 재.. 2021. 10. 12.
한글날 낙수(落穗) 한글날 이삭줍기 모든 행사를 토요일 특별활동 시간으로 집중시키는 까닭에 내가 기안한 ‘한글날 기념 교내 백일장’은 다음 주 토요일(18일)까지 기다려야 한다. 공교롭게도 금주 토요일은 ‘놀토’인 까닭이었다. 그러나 그 흔해 빠진 교내 백일장도 계획에 없는 학교에 그걸 치르게 되었다는 걸로 만족해야 할 듯하다. 나는 아이들에게 문병란 시인의 ‘식민지의 국어 시간’을 읽어주고, 주시경 선생 등 국어학자 몇 분의 이야기를 잠깐 했다. 또 나는 한글이 얼마나 정보화에 적합한 문자인가를 휴대전화의 문자 입력 방식을 비교하며 설명해 주었다. 26자의 알파벳을 9개의 자판에 두셋씩 배정해야 하는 영어에 비해 한글은 17자(삼성), 12자(엘지)만으로도 필요한 모든 문자를 입력할 수 있다고 했더니 아이들은 머리를 끄덕.. 2021. 10. 9.
이번엔 ‘달러’를 모으자고? 한나라당의 ‘외화통장 만들기’ 운동 제안에 부쳐 역시 한나라당이다. 종합주가지수는 폭락하고, 원 달러 환율은 수직으로 상승하여 둘이 각각 1300선에서 만나게 된 상황에서 ‘외화통장 만들기’ 운동을 벌이자고 했다는 것이다. 주연은 국회 정무위원장 김영선 의원이다. 김 의원은 제안은 이렇다. “지금은 외환보유고가 문제가 되는데, IMF때 금 모으기 운동을 했었다. 지금은 외환위기가 문제인데 집마다 100달러, 500달러 등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전 국민 외화통장 만들기를 해서, 통장에만 넣어만 놔도 장기 달러 보유가 되기 때문에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국민 참여의 좋은 아이디어 될 것 같기 때문에 지도부께서는 이 점을 검토해보시면 좋겠다.” 말씀인즉슨 집에서 ‘썩히고’ 있는 달러를 끄집어내어서 어려운 나라 .. 2021. 10.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