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찾은 봉하마을에서 노무현의 자취를 둘러보며 그를 배웅하다
*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오래 그를 ‘배웅’하지 못한 까닭
의도적 회피는 전혀 아니었다. 어쩌다 보니 그럴 기회가 없었던 것뿐이다. 만약 주변에 봉하를 찾아가는 이들이 있었다면 거기 묻어서 그 마을에 다녀올 수 있었을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난 뒤, 내가 그의 고향 봉하마을을 한 번도 찾지 않은 이유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할 수 있다는 걸 인정한다. 퇴직을 전후하여 나는 5월이 오면 봉하를 한번 다녀와야 할 텐데, 하고 중얼거리곤 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걸 실행하는 게 쉽지 않았던 것은 그걸 실행하지 않아서고, 그건 결국 그게 내게는 그리 갈급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2009년 5월 서울 교사대회로 가는 전세 버스 속에서 그의 부음을 들은 이래, 나는 그의 죽음 앞에서 내가 취해야 할 태도가 매우 곤혹스럽다는 사실을 깨달았었다. 그의 명시적 지지자는 아니었으나, 그의 정치 노선을 지지해 온 나는 대통령 당선 후에 그가 행한 정치적 선택 앞에서 분노하고 절망했다. 그 양가적 감정의 회오리를 나는 그의 장례를 앞두고 쓴 글에서 그렇게 펼쳐냈다.
그는 ‘꿈과 희망’이었고, 때론 ‘환멸과 배신’이었다
그는 내가 표를 주어 당선된 첫 번째 대통령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의 재임 기간에 그에게 적지 않게 실망했다. 날이 갈수록 그가 말하는 민주주의와 그의 정치적 선택 사이의 간극이 커지면서 나는 그에 대한 혐오의 감정을 숨기지 못하기도 했다.
그 무렵 쓴 글은 그가 ‘애증’의 인물이었다는 사실을 기반으로 그에 대한 대중들의 다중적인 감정을 환기한 것이었다. 그는 ‘희망’과 ‘꿈’이었지만 한편으로 ‘환멸’이고 ‘배신’이며 ‘절망’이었던 것이다.
노무현은 민주주의를 지향한 많은 민주시민에게 있어서 ‘애증’의 인물이었다. 우리 정치사에서 그만큼 국민의 적극적 지지와 사랑을 받은 정치인이 또 누가 있을까. 그는 때로 사람들에게 자랑과 자부였고, 희망과 꿈이었다. 그러나 그는 때로 환멸이었고, 배신이었고, 절망이기도 했다.
나는 그의 비극적 죽음이 결국은 이 나라의 민주주의의 성장통쯤으로 정리되리라고 생각하면서 이내 그 생각을 떨쳐 버렸다. 그러나 대회를 마치고 귀가하는 서너 시간 동안 줄기차게 방송된 TV 뉴스를 바라보면서 나는 조금씩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 전혀 의식하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데도 조금씩 그의 죽음이 무겁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단순한 죽음, 스쳐 가는 사고가 아니라, 이 나라 민주주의와 그 역사, 새로운 시대를 열고자 했던 한 정치인의 좌절과 패배였고, 그것이 환기해 주는 우리 자신에 관한 확인이었기 때문이다.
(……) 노무현의 죽음에 대한 시민들의 애도는 자기 파당의 이해만이 눈에 보일 뿐, 진실과 공의(公義) 따위야 오불관언인 세상, 순식간에 2, 30년 전으로 퇴행하고 있는 민주주의에 대한 우려. 그것 자체인지도 모른다. 시민들은 정치인 노무현의 죽음을 통하여, 지난 10여 년간 가꾸어 온 민주주의와 그 가치를 새롭게 기억하는 것이다.
(……) 그러나 그것과 무관하게 사람들은 새삼 2009년, 우리가 서 있는 자리를, 그 역사적 의미를, 지난 세기 내내 싸워서 지켜온 가치들을 성찰하고 있다. 많은 사람이 흘리는 눈물, 그 슬픔의 의미는 성장에 영혼을 팔고 있는 오늘의 삶과 가치에 대한 뜨거운 참회일지도 모른다.
[관련 글 : “노무현, 남은 자들의 성찰과 참회”(2009.5.24.)] 중에서
5월 29일, 그의 국민장 날에 나는 일간지에 실린 추모 광고를 살펴보면서 애증이 교차한 파토스(pathos)의 정치인을 배웅했다. “당신이 다시 태어나 바보 대통령이 또 한 번 된다면, 나는 다시 태어나 그 나라의 행복한 국민이 되겠습니다.”하고 사람들은 노무현을 떠나보냈다. [관련 글 : ‘그’를 배웅하면서(2009/05/29)]
나는 그가 퇴임하던 해(2008) 12월, 재임 기간 내내 무차별 확산하였던 ‘노무현에 대한 조롱과 증오’를 ‘바보 온달’에 대한 지배층의 경멸과 경계심‘에 견준 기사를 썼었다. 나는 그가 마땅히 비판받아야 하는 것을 부정한 게 아니라, 대중의 정치적 지향을 돌아본 것이었지만 대중은 여전히 미움을 버리지 않고 있었던 듯하다.[관련 글 : 온달과 노무현, 그 ‘경멸과 증오’의 방정식]
노무현이라는 한 정치인에게 집중된 지배 엘리트의 경멸과 증오에 편승했던 다수 대중의 에너지와 정치적 지향이 이르러야 할 지점은 어디쯤일까. 그것은 지금 그리고 여기, 우리들의 계급적 이해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아닐는지. 그리하여 그 이해를 바탕으로 새롭게 우리 사회의 지향과 미래상을 그릴 수 있다면 우리는 다시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으리라. - 위 ‘글’ 중에서
16년 만의 배웅…
그를 보내고 난 뒤의 이야기는 줄인다. 2017년에 나는 봉하마을에서 베풀어진 노무현 8주기 추도식을 모바일로 시청하면서 그를 다시 배웅했다. 그것은 마음속 깊이 남아 있던 애증의 사소한 자취마저도 비워버린 시간이었다. 그 글을 나는 “지난해부터 여러 번 저울질해 본 봉하행, 2009년 5월에 보낸 노무현을 영영 배웅하기 위하여 언제쯤 길을 떠날 수 있을까.”로 맺었었다. [관련 글 : 8년…노무현을 다시 배웅하면서]
지난 토요일(24일), 나는 노무현재단 구미 지역위원회의 봉하행에 편승하여 봉하마을을 찾았다. 봉하마을은 전혀 낯설지 않은, 잘 정비된 공원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거기 노무현 묘역이 없었다면, 뒤편 산의 부엉이바위 같은 풍경만 아니었다면, 거긴 자연이 잘 어우러진 공원이라고 해도 좋은 곳이었다.
마을을 돌아본 소감을 줄이는 대신 사진 몇 장으로 이 마을을 찾은 소회를 대신하고자 한다. 돌아오는 버스에서 시청한 다큐멘터리 <시민 노무현>에서 다시 만난 그를 추억하면서 평이하지만, 민주주의의 원리와 내용을 함축한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라는 그의 어록을 여러 번 되풀이해 읽어 보면서.
2025. 5. 26. 낮달
'이 풍진 세상에 > 길 위에서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폴로 11호 ‘달 착륙’과 공휴일 (1) | 2025.07.20 |
---|---|
울산 반구천 암각화, 한국의 ‘17번째 세계유산’이 되다 (10) | 2025.07.13 |
‘임을 위한 행진곡’에 담긴 건 피로 얼룩진 ‘역사와 진실’이다 (4) | 2025.05.25 |
2009년, 노무현 이야기 둘 (5) | 2025.05.23 |
그 도시가 맞은 45년 뒤, 더 선명해지는 ‘항쟁의 기억’들 (20) | 2025.05.1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