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저녁잠, 노화의 증거?
언제부터인지 정확히 말하기는 어렵다. 그게 노화의 증거라고 여기게 되기 때문인지 저도 몰래 그 기산점을 늦추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넉넉잡아 쉰을 넘기면서부터라고 해 두자. 어느 날부터 초저녁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밤 9시를 전후해 쏟아지는 잠을 감당하기 어려워진 것은.
어느 날 찾아온 ‘초저녁잠’
천하에 없는 드라마라도 혹은 영화나 소설을 보거나 읽고 있더라도 갑자기 엄습해 오는 잠 앞에는 당해낼 재간이 없다. 그렇게 고꾸라지면 두어 시간을 죽은 듯 잔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실컷 잤다 싶어서 깨어나면 자정 무렵이다. 밤이 길다는 사실을 절감하는 순간이 마치 꿈결처럼 다가온다.
전전반측, 옛 국어 교과서에나 나올 만한 상황이 기다리고 있다. 한 시간쯤은 기본이고, 운수 사나우면 두어 시간쯤을 뒤척여야 한다. 요행히 다시 새 잠이 든다고 해도 또 어김없이 서너 시쯤 되면 다시 잠에서 깨는 것이다.
서재로 가서 책을 읽거나 컴퓨터를 켜고 이리저리 인터넷을 배회하는 거로 시간을 죽인다. 한두 시간쯤 진을 빼다 보면 희한하게도 새로 잠이 온다. 새벽 서너 시께 새로 드는 잠이 그것이다. 그렇게 새 잠을 자고 나면 그나마 개운하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
선친께서는 등만 붙이면 코를 고는 타고난 낙천가이셨다. 같이 텔레비전을 보다가 어느 결엔가 아버지의 코 고는 소리가 들리는데, 주무시는가 싶어 채널을 돌리거나 전원을 끄면 마치 보고나 계신 듯, 왜 끄냐고 나무라셔 우리는 모두 은밀한 미소를 나누곤 했다. 아, 아버지는 주무시면서도 비몽사몽간에 텔레비전을 보고 계셨구나!
버스에 타도 선친께선 불과 1, 2분 상간에 잠드는 복 받으신 어른이었다. 그런데도 내려야 할 곳을 지나치는 실수가 거의 없는 것은 앞서 말한 주무시면서도 텔레비전을 보는 그 탁월한(?) 능력 때문이었다. 우리는 그런 아버지의 단순함과 순수함을 사랑했다.
아버지의 그 생광스러운 유전형질이 내 몸속에 연면히 흐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것은 어느 날부턴 잠들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였다. 피곤할 경우는 훨씬 쉽지만, 피곤하지 않아도 잠에 빠지는 데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게 되기에 이른 것이다.
젊은 날의 나는 꽤 잠에 예민한 편이었다. 예비군 동원훈련에 들어가면 거의 일주일 가까이 반은 깨어 있고 반은 잠든 상태의 선잠을 잘 정도로. 매번 잠자리에 들 때마다 온갖 잡생각이 어지러워서 ‘잠 못 드는 밤’이 적지 않았고 특히 잠자리를 바꾸면 더 힘이 들었다.
그러나 이제 나는 선친께서 그랬던 것처럼 아주 쉽게 잠에 빠져든다. 아내는 내가 자리에 누워 하나, 둘, 셋 하면 이내 코를 골기 시작한다고 부풀리지만, 그게 과장만은 아니라는 걸 나는 안다. 깨어나 잠들기 직전의 기억을 떠올려보면 깨끗한 백지밖에 남아 있지 않으니까.
두어 해 전부터는 학교에서도 눕거나 기대면 이내 잠에 빠져들 수 있게 되었다. 원래 나는 학교에서 조는 일이 무척 드물다. 동료 남녀 교사들이 책상에 엎드려 자는 모습을 보면서 그게 별로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한 데다 어쩐지 그런 식으로 잠에 빠진 자신의 모습이 몹시 추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어느 날부턴 휴게실의 간이침대에 눕는 것만으로도 이내 잠에 빠져들게 되었다. 낮잠은 반 시간쯤이 보통인데 자고 일어나면 평상의 컨디션으로 돌아오는 게 쉽지 않다. 한동안 어질어질해진 몸을 추스르고 나면 비로소 그게 얼마나 알토란같은 휴식이었는가 하는 걸 새삼 깨닫게 된다.
처음엔 등을 바닥에 붙여야만 가능했던 오수는 어느 날부턴 의자에 앉은 채로도 가능한 경지로 나아간다. 도저히 잠이 올 것 같지 않은 상태인데도, 눈을 감고 있으면 저도 몰래 잠속으로 빠져들어 가는 것이다. 가늘게 코도 고는 듯한데, 혹시 입을 벌리고 자지나 않을까 싶어 두렵기도 하지만, 그게 뭐 대수인가. 그게 내 모습이라면 굳이 감출 일도 없는 일 아닌가 하고 나는 생각하는 것이다.
‘잠’의 메커니즘
잠은 식욕, 성욕 등과 함께 인간의 가장 중요한 욕구 가운데 하나다. ‘자연스럽게 반복되는, 무의식 상태에서 휴식을 취하는 행위’(<위키백과> 이하 같음.)는 ‘의식은 없거나 줄어들고, 감각 기관이 상대적으로 활동을 중단하며, 거의 모든 수의근의 움직임이 없는 특징’이란다.
잠은 또 ‘자극에 대한 반응이 줄어드는 것으로 각성과 구별되며, 쉽게 의식을 되돌릴 수 있다는 점에서 동면이나 혼수상태와는 구별’된다고. “수면 중에는 동화 상태가 고조되며, 성장과 면역, 신경, 뼈, 근육 계통의 회복이 두드러진다. 수면은 모든 포유류와 조류, 다수의 파충류, 양서류, 어류에서 발견된다.”고 한다.
“수면의 목적과 기제는 부분적으로만 확인되었으며, 활발한 연구의 대상이다. 잠은 종종 에너지를 절약하는 것으로 여겨졌으나, 실제로는 신진대사를 약 5~10%만 줄일 뿐이다. 동면하는 동물들은 동면 중에 대사 저하가 보이긴 하지만 잠을 자야 하며, 이를 위해 저체온에서 발열 상태로 돌아온다.”고.
인간은 ‘잠’을 떠나 살 수 없다. 아무도 잠자지 않고는 살지 못한다. 하긴 사람은 태어나기 전, 어머니 배 속에 있을 때부터 잠들어 있다가 태어나면서 비로소 그 긴 잠에서 깨어난다고 할 수도 있겠다. 어릴수록 하루에 자는 시간이 길고, 자랄수록 짧아진다. 생후 1주에는 18~20시간, 만 1세에는 12~14시간, 만 10세에는 10시간 정도를 잔다. 성인은 하루에 대략 5시간에서 8시간 정도를 잔다.
잠이 부족하면 피로를 느끼고 감정이 날카로워져 짜증이나 화를 내기 쉬워진다. 또한, 잠이 부족한 상태가 장기간 이어지면 심혈관계 질환이나 정신 질환 등 여러 질병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 잠을 재우지 않는 게 고문 가운데 가장 악랄한 이유도 거기 있겠다.
건강에 유익하고 수명에 악영향을 끼치지 않는 최적의 수면 시간은 연구에 따라 다르다. 7시간 또는 6~8시간이 가장 적절하다는 연구 결과가 많은데 5~6시간 30분을 잘 때 수명이 가장 길다는 연구도 있다. 또한, 적절한 수면 시간에는 개인차가 있어 그게 이른바 ‘아침형’, ‘저녁형’ 인간을 나누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하루에 세 시간밖에 자지 않았다는 에디슨의 예는 ‘잠이 없다’는 게 계급을 가르는 중요한 변수인 것처럼 포장되기도 한다. 나폴레옹과 에디슨, 그리고 이명박과 정주영의 공통점이 잠이 없다는 거라고 강조하는 이야기에 숨어 있는 것은 ‘근면=성공’이라는 성공 이데올로기고, ‘나태=실패=가난’이라는 등식이다.
잠은 한편으로 ‘꿈’의 요람이다. ‘자는 잠’ 가운데서 ‘꾸는 게 꿈’이다. 꿈은 인간 무의식의 반영이라고 하지만 나는 늘 ‘개꿈’만 꾸니 꿈에 관한 한 별로 할 말이 없다. 꿈도 꾸지 않는, 꾸었다 하더라도 그것을 까맣게 잊어버리는 완벽한 숙면은 옛이야기다. 나이 들면서 온갖 형태의 잡다한 꿈에 밤새도록 시달린다. 그러니 깊은 잠을 즐기는 것은 애당초 틀려먹은 것이다.
노화하면서 잠의 질이 떨어지는 것은 바로 잠이 얕게 들면서 질병, 사회활동 감소, 스트레스, 소음을 비롯한 환경 요인, 약물(특히 신경 정신계통 약물) 등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라고 한다. 여기에는 밤마다 이런저런 꿈을 어지럽게 꾸는 것도 적잖이 작용하는 것 같다.
그나마 쉽게 잠이 들 수 있는 것은 축복이다. 결국, 노화와 함께 하나는 잃으면서 하나는 얻은 거로 생각하면 다행이고 공평한 일이다. 잃으면서 얻는 것, 그게 어찌 잠뿐이랴. 나이 들면서 육체는 쇠잔해 가는 대신 젊은 시절에 비겨 훨씬 깊은 생각을 얻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잠’은 진실로 ‘평등’할까
그러나 가끔 텔레비전을 통하여 대도시 노숙인들의 고단한 삶을 확인하면서 ‘지상의 방 한 칸’을 지니고 따뜻하고 푹신한 침구 위에 몸을 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축복인가를 생각한다. 신산하고 남루한 삶이지만 그들에게도 잠은 안식의 순간이 아니던가. 세르반테스는 잠의 ‘평등성’을 가리켜 그렇게 말했다.
“잠을 발명한 자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있을지어다.
그것은 모든 사람의 생각을 뒤덮는 외투요,
모든 굶주림을 치료해 주는 음식이요,
양치기와 왕, 어리석은 자와 현자를 평등하게 하는 저울추이다.”
그러나 현실의 잠은 이 스페인 작가의 멋있는 어록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밥은 열 곳에 가 먹어도 잠은 한 곳에서 자랬다’라는 속담은 사람은 모름지기 ‘거처가 일정해야 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비빌 언덕을 잃은 노숙인들에게 잠은 불과 몇 시간의 위안, 그것도 허기와 추위, 더위를 달래는 거짓 안식에 불과할 터이니 말이다.
중간고사와 2학년 아이들 수학여행 등을 치르면서 근무 부담이 줄었다가 다시 일상으로 복귀한 데다 기침 때문에 약을 달고 살다 보니 하루 다섯 시간 수업이 만만치가 않다. 그래서일까, 요즘은 10시 언저리에 잠이 들어도 자정은 너끈히 넘긴다. 새 잠에 들기도 그리 어렵지 않다. 역시 활동량이 잠의 질을 가르는 기준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대신 새벽 5시 전후하여 깨어나 아내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게 어느덧 일상이 되었다. 30년도 넘게 한 이부자리를 덮고 살아온 내외간에 무어 그리 살뜰한 사연이 있겠냐만 우리의 대화는 두런두런 이어진다. 새벽에 부모님의 두런대는 이야기 소리에 잠에서 깨어나던 어릴 적 기억을 떠올리면서 나는 우리가 당신들이 가신 길을 어김없이 되밟고 있다는 세대의 순환을 새삼 깨닫곤 하는 것이다.
2013. 5. 11.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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